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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낙서와 예술의 차이 /전진성

청계천 베를린 장벽 사건, 치기 어린 낙서 못마땅하나

예술이냐, 범죄냐 가르는 우리 사회 통념 또한 진력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18 18:40:0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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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필요한 데 힘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사랑과 증오, 희열과 슬픔, 몽상과 번민 등 먹고사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내면적 충동에 늘 휩싸여 어떻게든 밖으로 표현하고픈 욕구를 지닌다. 이러한 부질없는 욕구야말로 문화와 예술의 기원일 것이다. 특히 예술은 온갖 부질없는 것을 대책 없이 선보임으로써 사회의 규범적 질서를 교란시키고 허용의 한계를 재고하도록 이끈다.

예술과 예술가는 늘 사회적 특권을 주장한다. 평범한 시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탈을 즐기며 사회적 통념을 비웃는다. 그들의 오묘한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은 예술품 자체의 질적 수준이 아니라 그저 그때그때의 사회적 합의이다. 동네 아이들 수준의 그림도 이름값이 붙으면 황금보다 비싼 것이 된다. 확실히 예술은 사회로부터 고유의 지위를 얻지만 역설적으로 그 지위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 때 한해서만 예술일 수 있다.

그라피티, 쉽게 말해 낙서가 잠시나마 우리 사회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멀리 독일로부터 들여와서 서울 중구 청계천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에 한 젊은 예술가가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사건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시간이 지났건만 젊은 무명 예술가의 치기 어린 행위를 질타하며 법률 위반 여부를 논하거나, 정반대로 현대 미술 특유의 도발성을 현학적인 자세로 논평하는 외에는 별다른 사회적 논의가 없었다. 시민들의 반응도 대체로 짜증과 조소 일색이다. ‘예술이라고 다 같은 예술이 아니야’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구나.’

그러나 이런 식의 논의는 정작 이 낙서에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 시민들은 이 낙서에 분노했는가. 베를린 장벽이 역사적 순간을 담은 문화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문화재에 깃들인 통일의 정신은 이 무명예술가의 낙서 따위로 더럽혀져서는 아니 될 숭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해외의 유명작가가 와서 낙서를 행하고 그것이 국제뉴스가 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혹여 시민들은 이 돌덩어리가 더 명물이 되었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사실 이 돌덩어리는 이미 베를린 현지에서도 적어도 한쪽 면은 낙서 투성이었다. 서베를린 측에서 많은 시민과 예술가들이 서방세계의 자유를 뽐내는 듯 제멋대로 낙서를 해댔었다. 그렇다면 과연 차이는 무엇일까. 낙서의 예술적 수준 차이일까.

베를린 장벽은 주지하다시피 동서 냉전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독이 분단된 이후에도 동서 베를린은 한반도의 휴전선처럼 완전히 가로막혀 있지는 않았지만 1961년 8월 13일 단 하룻밤 만에 동독 측이 전 서베를린의 경계에 철조망을 두르고 겹겹의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번화했던 수도의 중심부가 소위 ‘죽음의 띠’로 가로막힌 가장 섬뜩한 장소로 전락했다. 독극물로 오염된 지뢰밭, 감시탑, 맹견, 철조망, 무장경비대를 통해 철저히 감시되던 베를린 장벽은 그 모습 자체로 비극적 역사를 웅변했다. 불가항력적으로 버티고 선 장벽 앞에서 서베를린 시민과 예술가들은 자유와 통일의 염원을 그렸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처음 만들어질 때처럼 갑자기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유럽의 최고 번화가로 등극한 베를린 중심가에서 장벽의 파편들은 일종의 기념비로 남았다. 그것은 불미스러운 과거를 상기시키는 기념비일까? 적어도 동독 출신 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중국인들이 왜 웃는지 아니? 그들에게는 아직 장벽(만리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야.”

베를린 장벽이 특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면, 남달리 아름답거나 혹은 유일무이한 역사적 유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기존의 미적 기준이나 역사적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전쟁, 테러, 분단, 그리고 통일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여태껏 실현되지 못한 꿈들과 새로운 현실에 대한 환멸을 은연중에 환기시킨다. 그런 점에서 기이한 형태의 돌덩어리와 낙서들은 예술 본연의 충격과 깨어남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서울 청계천에서 자행된 낙서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말초적 도발과 반달리즘 외에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새로움을 제공하는가. 만약 이 낙서에 결핍된 것이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정신적 모색이라면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결핍된 자질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치기 어린 낙서도 못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 또한 진력난다.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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