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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싸우지 않는 고수 /이정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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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15 19:29:1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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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근무를 마치고 도시철도역까지 걸어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뭔가를 부탁한다. “건강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한 번 오세요. 어디냐면….” 아주머니는 행인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건강용품점을 홍보한다. 나는 아주머니를 길동무로 삼고 싶지 않아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다.

그때, 맞은편에서 심상찮은 기운을 내뿜는 초로의 여인이 다가온다. 아주머니는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여인에게 다가간다. “우리 어머니, 건강하게 사셔야지예? 여기 한 번 오이소.” 여인은 아주머니의 호들갑에도 동요하지 않고 명함을 읽는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머니의 왼팔을 가볍게 붙잡고 말한다. “아줌마, 우유 하나 받아 드이소.” 아주머니가 당황하자 여인이 덧붙인다. “건강할라믄 우유를 자셔야지. 내한테 신청하면 사은품도 있어요.” 아주머니는 지금 받아먹는 우유가 있다고 결계를 쳤지만 여인은 그렇다면 다음 달부터 새로 신청해서 마시라고, 사은품도 받고 이득이라며 아주 쉽게 봉인 해제한다.

초로의 여인은 고수임이 분명했다. ‘관계 맺고 끊기’의 고수. 사람들 사이에 기 싸움이 일어나는 순간 능력을 발휘해 해결하는 사람 말이다. 실생활에서 만나는 고수들은 모두 내 상상 밖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며칠 전 볼일을 마치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보에 없던 비라 사람들의 마음은 바빠졌다.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 걱정이 우선일 것이다. 버스가 오자 사람들이 급히 올랐다. 6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통화를 하며 타느라 늦장을 부렸다. 아저씨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급한 마음에 아저씨의 등을 슬쩍 밀었다. 순간, 아저씨가 홱,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 방금 내 밀었소? 사람을 와 미요?” 아저씨는 버스에 오르고 나서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주머니에게 계속 화를 냈다. 결국 80대의 할아버지가 “내 보기엔 당신도 잘못했네. 그냥 조용히 갑시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뭔데 간섭이냐고 화를 냈고 할아버지는 외쳤다. “야, 니는 아부지도 없나?” 이 한마디에 버스 안이 쑥대밭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사이에 서 있었는데 내 어깨 위로 아저씨의 팔이 허우적거렸다.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휴대전화를 찾았다. 그러는 동안 버스 속의 할머니들이 조용히 나섰다. 그들 중 몇은 몸싸움을 하지 않도록 할아버지의 뒷덜미를 잡고 “고만하라고 할 때 고만할 것이지. 싸울라면 내려서 싸우소!” 라고 외쳤다. 아저씨의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내가 심장병이 있어가 지금 심장이 벌렁거린다, 내 쓰러지기 전에 고마 하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저 편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비도 오고, 사람 마음은 바쁘고… 아저씨가 화날 만하지. 그래도 사람 많은데 다치면 우짜노.” 아저씨의 목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버스에서는 싸움이 안 되겠다 여겼는지 결국 아저씨는 정류장에 정차하자마자 문 앞에 서서 할아버지를 향해 따라 내리라고 말했다. 그러자 심장병 할머니가 “내 쫌 내립시다!”고 외치는 바람에 아저씨는 얼떨결에 먼저 내리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호기롭게 나섰지만 할머니들에 붙잡히는 통에 내리지 못했다. 버스는 출발했고 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경찰 부르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는 할머니들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웹툰 ‘고수’의 주인공 ‘강룡’은 스승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세상에 돌아오지만 그 원수는 이미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만둣가게의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배달실장이 된다. 그는 끊어진 다리가 놓인 절벽 사이를 가뿐하게 넘고 물 위를 쉽게 걸으며 만두가 식기 전에 도착한다. 그의 이 가공할 만한 실력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만두를 주문한 노동자들이 산사태로 굴러온 바위가 길을 막아 곤란을 겪으면 바위를 격파해주고,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만두를 챙겨 먹인다. 악당들마저 혼을 내도 죽이지 않는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강룡 같은 고수를 실생활에서 찾는다면 저 할머니들이 아닐까. 작은 체구로 여유롭게 관계를 조율하는 저 솜씨. 아무래도 나는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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