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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어느 저녁의 문화활동 보고서 /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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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1 19:04:5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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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태풍 쁘라삐룬이 북상 중이란다. 지도상에는 일본 열도 아래에 위치해 아직 영향권에 든 것도 아닌데 왠지 구름은 심상찮고 미풍에도 얼마 후에 닥칠 강한 바람의 기미를 읽는다. 어쨌든 태풍 탓이기도 한 듯 저녁이 훅 다가왔다. 동네 주민모임에서 주최하는 ‘우리 동네 영화 수다방’ 프로그램에 가려던 참인데 어영부영하다가 밥도 못 먹고 가게 될 형편이다. 음악영화를 보고 작곡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작곡가가 그 영화의 음악을 만든 이는 아니다.

허기를 달랠 요량으로 가는 길에 만두를 조금 샀다. 동행하는 후배 말로는 나름대로 맛집이라고 한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막 넘어가던 무렵, 그 집의 팥빙수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이것저것 넣지 않고 팥에만 집중한 원형질의 맛이었는데, 국산 팥을 직접 삶아서 쓴다고 했다. 나도 수년 전에 마을기업으로 카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들었던 팥빙수 생각이 났다. 먼저 국산 팥을 사서 돌과 이물질을 골라내고 삶는다. 팥이 끓어오르면 첫 물은 버리고 새로 물을 붓고 삶는데 그렇게 하면 팥의 사포닌 성분 때문에 혹시 있을지 모를 속 쓰림이나 배탈을 예방한다고 한다. 팥은 삶는 정도가 중요하다. 시간이 조금 모자라면 포실한 질감이 없고 지나치면 물컹해진다. 연유와 딸기잼도 직접 만들어서 말 그대로 수제 팥빙수였다. 제법 많은 이가 나의 팥빙수를 맛있어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는 옆 동네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러던 중에 아쉽게도 그만두게 되었는데 아마 계속했더라면 나름 맛집의 대열에 끼지 않았을까.

구획정리가 잘된 신도시의 산 쪽 방향에 그 집은 있었다. 2층 주택의 1층은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구석에 놓인 그랜드피아노가 시선을 끈다. 몇몇은 영화상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쉬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 사이에 작곡가는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서 바로크음악, 낭만주의음악,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특징적인 연주를 보여주며 음악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앞에 앉은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불러내서 피아노의 아무 음이나 골라서 건반 두 개를 두드려보라고 한다. 아이가 건반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작곡가는 아이의 음에 맞춰 자연스럽게 반주를 한다. 순간적으로 멋진 연주가 완성됐다. 피아노를 치는 아이와 어른, 그것을 보는 어른과 아이들이 잠시 서로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끝내 그날 보려고 했던 영화는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비올리스트 용재오닐이 다문화가족의 아이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헬로?! 오케스트라’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둘러앉아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폼 잡으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감상평을 말하기 전에 아들이 떠들고 다녀서 모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는 젊은 아버지가 있는, 자신도 한때 비올라를 배웠지만 스스로 청음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펼쳐놓는 편안한 자리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음악 교육에 대한 것이었는데 제대로 된 문화예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민선 7기 지방정부가 출범을 한다. 그동안 각 지자체나 기초단체까지도 예전에 없이 인수위 형태의 조직을 꾸려 업무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부분을 독자적으로 인수위 조직에 넣은 경우는 과문한 탓인지 보지 못했다. 일자리 문제나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등의 경제적인 지표들만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속 다양한 시민의 요구, 4차 산업혁명시대 아래 기계와 인간의 관계,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 복잡하고 중층적인 갈등요인의 증대 등 지금 우리 사회는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있다. 이것을 풀어가는 실마리는 문화적 상상력과 창의성에 있다.

정치와 행정의 단위가 문화예술의 힘과 가능성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혹은 안다고 하면서 미적거리는 사이 창의적인 시민들은 스스로 공간을 만들고 내용을 채우고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시민과 함께 도시를 디자인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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