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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배우자(配偶者), 배우자 /손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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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29 20:34:44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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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입력되는 시가 있고, 가슴으로 안겨 오는 시가 있습니다. 머리로 입력되는 시는 계산이 필요하지만 가슴으로 안겨 오는 시는 그냥 훅, 들어와 버립니다. 어떤 시가 훌륭한 시냐를 떠나서 저는 그냥 가슴으로 안겨 오는 시가 좋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부부’란 시도 어느 날 제 가슴으로 불쑥 안겨 왔습니다.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함민복 ‘부부’ 전문)



어떻습니까? 서로의 마음을 읽고 눈높이를 맞추고 걸음의 속도를 맞추어 한 발, 또 한 발 걸어가는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두 사람이 공유할 인생이 상 위에 가득 차려져 있습니다. 정성껏 차려진 긴 상에는 자식과 부모,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친구와 동료도 있고 이웃도 있습니다. 재산도 있고 명예도 있고 꿈도 있고 추억도 차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상 가득 차려진 긴 상을 들고 가다가 갑자기 ‘좁은 문’이란 난관을 만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사람은 더욱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수평을 맞추며 그 좁은 문을 빠져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두 사람의 인생과 가족의 행복이 담긴 소중한 상인데 잘못해서 뒤엎을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힘들더라도 상 위의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눈을 맞추고 발을 맞추고 마음을 맞춰 끝까지 들고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나 아닌 대상과 기쁨의 관계를 맺고, 인생을 공유한 배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판을 뒤엎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래도 결혼을 삶의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결혼하더라도 삶이 권태로우면 이혼하면 그만이라는 자기중심적 풍조가 판을 치다보니 자기 뜻과 조금만 맞지 않아도 참지 못하고 판을 뒤엎는 세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또 판이 엎어질까 걱정하면서 부부가 가는 길에 방해물이 있다면 치워주기도 하고 방향이 잘못되면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어른이 적다는 것도 문제일 것 같습니다. 또 어쩌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비혼’이니 ‘졸혼’이니 하면서 판 엎기를 부추기고 있는 사회 풍조 탓인지도 모릅니다.어쨌든 이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당사자인 부부가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아이는 더 심각한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는 결혼생활에서 각자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꼭 알고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혼은 가장 나쁜 선택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만약 둘 사이에 자녀가 있다면 이혼 후에도 자녀양육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배우자는 부부 사이에서 짝이 되는 상대를 지칭하는 말이죠. 그런데 이런 사전적 풀이 말고 저는 ‘배우자(配偶者)’란 말에서 말 그대로 ‘배우자’ 즉 ‘본받아 따르자’ ‘공부하자’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서야 배울 수는 없잖아요. 배우자의 가치관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두 사람은 진정한 인간적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란 말 속에는 바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배워야 배움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뜻을 살려 단수시조에 담아봤습니다.



배우고 배워도 못 다 배울 경전인가
모난 데 껴안고 닳도록 엮다 풀다

배우자 또 배우자고 배우자라 하는 게지( 졸시 ‘배우자(配偶者)’ 전문)



결혼식은 남녀가 평생을 함께 지낼 것을 가족친지와 하객 앞에서 맹세하고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여러 가지 의식이 있지만 공식적인 부부가 되기 위해서 혼인서약을 할 때 ‘배우자(配偶者)를 배우자’라고 크게 한 번 외쳐보면 어떨까요? 이제까지 없었던 아주 사소한 이벤트이긴 하지만 ‘서로 높이를 조절하며, 걸음의 속도도 맞춰야’ 하는 ‘배우자’의 또 다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마음속에 새길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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