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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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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28 18:52:3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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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고민하며 주제로 잡아 쓰던 글을 눈 질끈 감고 지워버렸다.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듣고서였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그 뒤의 일 때문이다.
   
망백(望百)을 넘긴 그의 생을 감히 논할 계제는 아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기억 하나를 더듬으면 총리로 지명되어 등청하던 첫날 손수 운전하고 나타났던 사진이다. 아주 오래전,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일이지 싶은데 너무 멋있어서 여태 지워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떤 삶이든 공과(功過)는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정치라면 공보다는 과가 더 도드라지기 쉬운 법이고 한 번 물면 절대 내뱉거나 삼키려 하지 않는 것이 세태이니 시쳇말로 ‘네 마음대로 하세요’다. 그렇더라도 고인의 멋은 선뜻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옷차림의 패션에서부터 인품까지 두루 말이다.

정치의 기본은 말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 가운데에서 숱한 흥망을 겪은 풍운아였지만 그는 천박하고 상스럽고 모질고 독한 말을 내뱉지 않았다. 성취에 들떠 경망스럽게 자찬하지도 않았고, 저 분노를 어떻게 삭일까 싶은데도 고금을 에두른 품격의 비유로 일갈해 시속에 유행어로 회자되게 했으니 참 멋스러웠다. 외교무대에서도 남달랐다. 첨예한 사안에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국익을 지켰고, 상대는 낯을 붉히거나 등을 돌리지 못했다. 오히려 존경하는 벗으로 삼아 그의 부음에 절절한 애도를 전해왔으니 나라의 격을 높인 품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과의 교유도 담대하게 멋있었다. 같은 무대 위에서의 경쟁도 아니고 마주 선 적으로 치열했더라도 때에 이르면 함께 새 길의 문을 열기도 했다. 권력을 향한 타협이라는 시선도 있겠지만 역사의 흐름 앞에 순응하여 노를 젓는 결단이기도 했으니 좀스럽지 않은 용기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교유도 남달랐다. 정치와 권력을 위한 만남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폭넓은 만남과 오래도록 인연으로 이어간 넉넉함. 사람으로서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무엇보다 백미는 ‘무항산(無恒産)은 무항심(無恒心)’이라는 그의 확고한 철학이었다. 그가 주동이 된 ‘5·16’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에게 ‘항산’의 의지를 갖게 했고, 성과도 있었다. 베푸는 선의(善意)도 아름답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일깨워주지 못하는 선의만으로는 한 사람의 인생조차 바꿀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정치가로서, 지도자로서 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도 쉬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앞서 떠난 부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얼마나 절절했던가. 이제 당당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라며 사랑의 말은 넘쳐나는데 그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에서 참으로 귀감으로 삼을 만한 낭만 아니던가!

그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에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개인으로서야 제각각의 감정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목소리지만 그저 총리 역임의 경력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정치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서훈(敍勳) 결정은 나라의 격에 맞는 일이었지 싶다. 다만 이미 ‘정치는 허업(虛業)’이었다고 소회를 밝힌 그가 향불 뒤에 앉아서도 바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관례에 따랐다는 사족은 개운치 않았다.

YS나 DJ 재임 중에 맞은 상(喪)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대통령이 직접 문상하는 광경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상 직접 문상이 어려웠다면 최소한 임종석 비서실장이라도 보내 추모하는 것이 좋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현 정권이 출범하고 내내 국내 정치에서만 유독 모질다는 생각이다. 적폐 청산을 위해 감옥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군데군데에서 나타나는 점령군 행세는 무슨 완장부대를 보는 것 같다. 당장 포스코 회장 선출을 두고 있었던 여당 원내대표의 여러 말은 분명 노골적인 개입이고 압박이었다. 그래놓고도 최종 결정에 또 감정 섞인 생각을 감추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노골적인 완장 행세였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승자의 권리라 해도 국민의 눈에 악에 받친 것으로 비친다면 결코 옳은 일이 될 수 없다. 악에 받친 것인지 아닌지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나라 정치에서 말의 품격이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여야를 불문하지만, 너무 노골적이고 거침이 없다. 훈장 추서에 굳이 ‘관례’를 들먹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꼭 그렇게 마음 내키지 않았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했을까. 졸렬하고 섬뜩하다.

6·13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완승은 아니었다. 60.2%의 투표율에 50%를 조금 넘는 득표율로 당선을 쓸어갔을 뿐이다. 그것도 대통령의 빛나는 행보를 등에 업고서 말이다. 승리를 낙관해서 투표장으로 가지 않은 유권자보다 야당이 꼴 보기 싫어 가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에 관대한 만큼 국내 정치에서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국내 정치에서 모진 만큼 북한과 김정은의 본질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드문 성과에 말로서 환상을 키우는 일도 적당히 해야 할 것이고. 가야 할 길이고 문이 열리는 것 같지만 낙관할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의 명운이 걸린 대사를 앞에 두고 모진 말과 완장 노릇으로 내부의 분열을 키우는 어리석음이라니. 더군다나 중국의 다리걸기가 점점 심상치 않은데 우방과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면 한순간에 신기루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무항산은 무항심’임을 국정 제일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달콤한 유혹은 당장은 쉽지만 점점 커지는 요구는 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제 팔마저 뜯기게 될 것이니. 복지와 더불어 스스로 ‘항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백년대계는 떠나는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지혜를 적의(敵意) 없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 일이다. 사족 하나, 먼저 잡았던 주제는 ‘경축, 6·13 폭망!’이었으니 나 역시 순화된 셈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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