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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건축인문학 /황선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창조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작은 우주를 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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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27 18:59:42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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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의 ‘건축, 사유의 기호(돌베개, 2004)’는 건축의 인문학적 사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건축을 단순히 자본의 수단이나 상징이 아니라, 사람이 거처하는 공간, 사람과 호흡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건축(建築)이라는 일본식 표기보다는 ‘지어서 만든다’는 표현의 영조(營造)를 쓰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건축인문학이라는 말은 건축을 공학과 예술의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인식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은 인간의 사유 체계가 기호로 표현된 것이다. 이 사유의 기호는 살아 있는 자만이 가지고 있는 기호가 아니며, 죽은 자도 가질 수 있는 기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스톡홀름에 있는 우드랜드 공동묘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도시이며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자문하는 사유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종묘 뜨락에 올라서 위패를 모셔둔 곳을 바라보면 건물 자체에서 울려오는 깊은 사유의 세계가 스며들어 있다. 산 자만을 위한 건축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무는 건축이야말로 인문학적 사유가 깃들어 있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설계한 노무현 묘역은 이러한 건축인문학의 사유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인문학의 전제 조건은 짓는다는 행위에 있다. 건축인문학의 관점에서는 집을 짓는 것이지 집을 세우고 올리는 물리적 운동만을 의미하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짓는다는 행위보다 아름다운 행위가 있을까. 밥을 짓고 옷을 짓고 글을 짓고, 집을 짓고 심지어 복까지 짓는다고 말한다. 짓는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넘어서 짓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창조적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라는 소우주뿐만 아니라 타인이라고 하는 또 다른 소우주를 지어나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주라는 한자어는 집 우(宇) 집 주(宙)라고 말하지 않던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우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집인 셈이다. 그 거대한 우주의 축소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집의 대문은 우주로 들어오는 관문(關門)이다. 관문은 관계를 맺는 기호의 체계다. 바깥과 안이 소통되는 길이고, 우주로 통하는 길이다. 이 때문에 관문이야말로 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 집의 대문이 놓인 위치에 따라 집의 길흉을 판단할 수 있으며, 그 문의 모양에 따라 그 집의 주인을 가늠할 수 있다.
문에 얽힌 중국의 유명한 장인의 이야기가 있다. 실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어떤 장인이 당대 최고라고 소문이 난 장인의 집에 찾아가서 그 장인과 솜씨를 겨루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유명한 장인의 집을 찾아간, 실력을 뽐내고 싶은 장인은 그 집의 대문을 보고는 도망쳤다고 한다. 유명한 장인이 만든 그 기묘한 문양의 대문 장식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집의 문은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모든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위용이 있는 솟을대문이라고 해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기운이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면 그 문은 가식에 불과할 것이고, 소박한 문이라고 해도 그 집 주인의 깊은 사유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으면 웅장한 대궐의 문과도 같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집은 가족이 모여 가꾸어가는 작은 우주이다. 그 우주의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기 마련이고, 그 질서의 처음이 바로 문의 기운이라 할 수 있다. 집은 그 집안의 모든 사람들의 기운이 새겨진 공간이다. 이 때문에 집은 기억의 장소이고, 사유의 기호 체계이고, 인문학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가 집과 어울리고 그것이 하나로 기억으로 형상화될 때 그 집은 사람이 살다가 떠나는 인문학적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여정도 집을 짓고 허무는 과정과 같은 것이 아닐까. 거대한 피라미드와 같은 집을 남기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소박한 자신만의 집을 남기고 가는 사람도 있고, 우주를 집이라고 생각하고 한 줌의 먼지로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죽은 자가 남긴 집은 그 사람과의 기억을 공유하는 장소이고, 그 장소에는 그 사람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사람의 기운을 짓는 것이다. 건축이 인간의 사유 체계라고 할 때 사람을 살리는 집, 사람을 가꾸는 집,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집이 지어질 것이다. 이런 집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문학으로서 건축일 터이다. 건축을 인간 사유의 체계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기호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집의 개념이 아닐까 한다. 사람과 함께하는 집,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 집, 이런 아름다운 집이 필요한 시대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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