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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다시 문제는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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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24 18:50:31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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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은 다들 아시는 대로 ‘사람 중심의 경제’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구체적인 세목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맞춰 미래의 성장 동력을 키워가면서도 성장의 과실을 서민에게 되돌려주자는 이야기이겠다. 그러려면 대기업에 대한 특혜를 줄이고 그동안 눈감아 왔던 탈·편법 사슬을 끊고 공정과 정의를 이루기도 해야 할 거다.


소외됐던 노동자, 서민, 약자들에게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좋은 일이다.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북돋우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이 나쁜 일일 턱은 없다. 하지만 경제는 유기체가 아닌가. 장기 한 군데가 탈이 났을 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이 생겨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의 몸이다. 경제는 조심하고 조심해서 다뤄야 할 유리그릇이랄밖에. 문제는 경제다!


   
숨 가쁘게 펼쳐졌던 ‘북핵 폐기 협상’ 드라마의 제1막이 끝났다. 지방선거도 끝났다. 밀쳐두었던 국정 현안들이 그 빈자리에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다. 검경수사권 재조정은 일단락됐지만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같은 난제가 남아 있다. 남북 합의의 후속 조치도 하나하나 이행해야 한다. 여야의 힘겨룸 끝에 꺼져 버린 개헌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느냐도 관심사의 하나다.

하지만 무어니 해도 지금 최대의 화두는 경제가 아닐 수 없겠다. 경기가 펴이지 않는다고, 서민 생계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고,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야단들이다.

왜 안 그렇겠나.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는 법.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문재인 대통령 말마따나 ‘등에 식은땀이 날 만큼’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집권 측이지만 진짜 실력은 경제에서 판가름 날 거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이 승리한 비결은 현직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에게 날린 말 펀치가 아니었던가.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은 다들 아시는 대로 ‘사람 중심의 경제’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구체적인 세목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맞춰 미래의 성장 동력을 키워가면서도 성장의 과실을 서민에게 되돌려주자는 이야기이겠다. 그러려면 대기업에 대한 특혜를 줄이고 그동안 눈감아 왔던 탈·편법 사슬을 끊고 공정과 정의를 이루기도 해야 할 거다.

지난해 10월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그때 “4차 산업혁명은 기술적인 발전뿐 아니라 개인 생활 방식, 고용 형태와 같은 사회구조 변화 등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4차 산업혁명 역시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터다. 다시 말하자면, ‘적자생존의 정글’인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원리인 ‘경쟁’의 비정함을 넘어서서 인간을 생산과 분배의 주체로 앞세우겠다는 뜻이겠다.

나는 ‘사람 중심 경제’라는 슬로건에 동의한다. 아니 지지한다. ‘제이노믹스’, 다시 말해 ‘문재인 경제학’은 케인스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케인스 이론의 핵심은 정부가 민간 경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한편 정부 지출을 늘려 유효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대량 실업을 없애고 완전 고용을 이루자는 것. 케인스 경제학은 시장과 민간 부문이 국가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반박한다.

케인스 이론의 효용성은 미국 대공황을 수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도입한 ‘뉴딜 정책’에서 입증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1929년 10월 24일, 불과 한 달 전 381.17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던 뉴욕 다우존스지수가 하루아침에 21% 급락했다. ‘검은 목요일’이 바로 그날이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상품의 재고가 쌓이고 물가가 폭락했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났고 국민총생산은 반 토막 났다. 실업자들은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졌고, 농장주들은 오렌지를 땅에 묻거나 석유를 뿌려 썩이느라 골치를 앓았다. 같은 시간 농장 밖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오렌지를 훔치다 경비원의 총에 맞기도 했다. 오랜 세월 순항하던 자본주의의 자기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 거다. 풍요 속의 빈곤….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실업과 경제 위기를 해결할 대책으로 공공주택과 도로 건설, 전력망 확충 등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자는 케인스의 제안을 채택했다. 실업보험·노령자 부양보험·극빈자와 장애인에 대한 부조도 시행했다. 이른바 ‘잊힌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 뉴딜(New Deal)’이 바로 그것. 1기 뉴딜은 후버댐, 테네시강 유역 개발 등 대규모 토목공사와 공공일자리 정책이 핵심이다. 2기엔 복지 확충, 최저임금제 도입, 노조의 교섭권 인정과 대기업의 횡포·반칙에 대한 철저한 규제 등이 시행됐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대성공을 거둬 미국과 세계를 대공황의 늪에서 건져냈음은 다 아는 바다. 그렇게 보면, 문재인식 ‘사람 중심 경제’가 철학적, 윤리적인 측면에선 옳은 방향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까진 한국판 뉴딜 정책이 실물 경제에선 잘 먹혀들지 않는 데 고민이 있다. 산삼, 녹용 넣은 보약도 몸이 받쳐주질 않으면 복통이나 일으키지 않던가.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의 세부정책의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에 나섰던 터다. 올해 초 최저임금을 지난해보다 16.4% 올린 7530원으로 책정했지 않았나. 그랬더니, 오히려 서민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고 야단이다. 비싼 월세와 다락 같이 오르는 재룟값에 몸서리치는 판에 임금까지 올려줘야 하니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직원을 줄이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했던 거다. ‘주 52시간 노동’도 마찬가지. 국제기준에 비해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자는 취지일 터.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 빈자리를 메꾸느라 고용도 늘 거란 게 정부의 기대였을 거다. 그런데 초과근무수당이 없어져 소득이 줄어든다고 노동자들이 아우성이다. 기업도 입이 튀어나와 있다. 그러니 날이 맑으면 나막신 장수 아들 걱정, 비가 오면 짚신 장수 아들 걱정인 늙은 어머니가 바로 정부 꼴이다.

더 심각한 건 고용동향이다. 정부가 경제정책의 핵심을 ‘일자리 늘리기’에 둔다고 되풀이 강조했건만 고용동향은 나빠지고 있다. 지난 5월 취업자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7만2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8년4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득 하위 20%(1분위)의 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 분배의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문 정권의 핵심적 경제 운용 철학인 ‘소득주도성장론’을 두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재원을 투입해 일자리와 임금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그게 다시 재투자돼 성장률을 높인다는 게 소득주도성장론이 아닌가. 공무원 늘리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인상 등이 그 정책수단으로 동원됐다. 이론적 배경을 따지자면 케인스에 잇닿아 있다. 공공투자를 통한 간접 소득 창출 대신 직접적인 소득 증가를 꾀하는 게 다를 뿐.

우파 경제학자와 보수언론들은 생산성 증가 없이 인위적으로 소득만 올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발상은 허구라고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면 일부 대기업 노조원들만 배를 불리고 영세 근로자들은 갈수록 더 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까지 공격하고 있다.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도 우려를 보이고 있다.

고용 등에서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이곳저곳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정부 내 경제 정책 운용 주체끼리도 충돌하고 있으니 문제는 문제다. 업계의 반발에 일부 후퇴 조짐도 보인다. 정부가 경총의 요구를 수용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단속과 처벌을 올해 말까지 유보하기로 한 것도 그 하나다. 단속과 처벌을 늦추겠다는 건 시행을 사실상 유보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지 않나. 상황이 이러니 강력한 ‘소득주도성장론자’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속도조절론자’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갈등설마저 불거져 나왔다. 한때 장 실장의 사임설까지 나돌았던 마당이니.

아직 정부의 경제 철학 자체를 통째로 바꿀 단계는 아닐 터이다. 하지만,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니 경제 기조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청년실업 해소를 포함한 일자리 늘리기에 쏟아붓는 정부 재정이 효과를 발휘하는지, 모래땅에 부은 물처럼 가뭇없이 잦아들어 버리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청와대도 ‘속도조절론’을 누르려고만 할 게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필요하다면 궤도 수정을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소외됐던 노동자, 서민, 약자들에게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좋은 일이다.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북돋우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이 나쁜 일일 턱은 없다.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골고루 돌아가지 않음을 걱정하라’는 ‘불환빈환불균(不患貧患不均)’의 치세 이념도 좋다. 하지만 경제는 유기체가 아닌가. 장기 한 군데가 탈이 났을 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이 생겨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의 몸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여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는 조심하고 조심해서 다뤄야 할 유리그릇이랄밖에. 문제는 경제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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