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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식물과 우리를 믿는다 /오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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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08 19:23:40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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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에 정착하고 얼마 안 돼 마을 어르신을 만났다. 그때 이분께서 땡볕에 밭일을 하고 있는 농부를 멀리서 보며 이랬다. “참 열심히 하는 거만. 근디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죄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여~.” 말인즉슨 시골 사람들은 이미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일을 마치고 저런 땡볕에서는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바로 깨달았다. 특히 여름에는 오전부터 내리쬐는 햇볕의 기운이 막강하다. 그러니 서 있기도 힘든 상황에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선한 새벽에 일을 마치고 햇볕이 강한 낮에는 잠시 몸을 숨겼다가 다시 해가 기울어갈 즈음 움직이는 것이 시골일의 요령이다. 정원 일도 마찬가지다.

사실 요즘 우리 부부는 새 텃밭 정원을 만드는 일로 새벽이 분주하다. 텃밭 정원은 관상용 정원보다는 좀 더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우선 관리가 손쉬우면서도 디자인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각각의 공간이 기능적으로 잘 구성돼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거름을 만드는 공간이다. 이 거름 만드는 곳은 지저분해보일 수 있기 때문에 빼놓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이 역할이 살아나지 않으면 유기 텃밭정원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유기 거름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식물이 한 해 동안 배출하는 잎, 줄기, 가지 등과 곡물의 껍데기 등을 섞어 만든다. 물론 양질의 거름이 되려면 이 재료들의 비율과 특정 식물에게 별도로 필요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등 좀 더 과학적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원론적으로 각각의 정원에 필요한 거름을 만드는 일은 정원에 심어진 식물을 활용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내가 만든 이 유기 거름으로 텃밭 혹은 정원에 사는 식물을 다시 키울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화학비료, 살충제, 살균제의 사용이 없는 진정한 유기적 정원을 만들 수 있다.

대량 생산의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 2차 세계대전 즈음이다. 전쟁 속에 굶어죽는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나라는 대량과 속성으로 채소와 곡식을 재배해야만 했다. 이때 폭발적으로 화학 비료, 살충제, 살균제의 개발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 화학제의 사용은 농사의 혁명을 만들어냈다. 병충해를 앓지 않는 그야말로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속성, 대량으로 수확되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화학제 사용의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는 중이다. 사실상 단일 작물을 수백 혹은 수천 평에 줄을 지어 심는 대량 재배 방식으로는 그 작물을 목표로 들어오는 해충과 병균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러니 살충제, 살균제를 쏟아부어주어야 하고, 이 화학제는 고스란히 식물에게 남겨진 뒤 우리 몸으로까지 들어온다.

더 근본적인 지구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도 있다. 질소가 강화된 화학 비료의 사용은 지구온난화를 불러 오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증가시키는데, 그건 식물이 다 소화하지 않은 땅속 질소가 공기 중으로 이산화탄소가 되어 날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정원이나 밭에서 나오는 식물의 부산물을 골고루 섞어 발효시키는 유기 거름은 질소의 양이 자연 비율 정도로 최소화돼 있다. 더불어 이 유기 거름 속에는 미생물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 복합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생태 환경이 구성돼 있다. 물론 그래서 그 안에는 식물에 해를 끼치는 미생물도 존재하지만 식물은 흙 속에 이런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시킬 수 있는 화학물을 흘려보내 서로 적정하게 공생이 가능하도록 조절한다.
문제는 우리가 살충제, 살균제, 화학비료를 쓰게 될 경우 이렇게 식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없애게 되고, 이 상황은 다음 해 더 많은 화학제를 써야 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논과 밭은 물론이고 정원까지도 약을 치지 않으면 관리가 어렵다고 말하고 일부 전문가까지도 여기에 수긍한다. 그러나 화학적 비료와 살균·살충제의 사용은 그 역사가 이제 고작 50여 년이다. 숲과 산에 사는 식물이나 우리가 키우고자 하는 재배식물이나 그것이 식용이든 관상이든 생명체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우리만큼이나 맹렬하다. 그래서 절대 해충과 병균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다. 다만 식물들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해결점을 찾아갈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뿐이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바꾸지 않고 지속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을 후퇴시키는 것도 없을 듯하다.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송두리째 한꺼번에는 아니라고 해도 조금씩 한 걸음이라도 좀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을 통해 내가 먼저 조금씩 좋아지고, 이런 내가 여럿이 모여 세상도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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