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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85살 청춘 /남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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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01 20:52:53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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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연이은 남북 정상들의 만남에서 백두산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다른 것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백두대간을 등반하던 중 우리는 북쪽 백두대간을 조만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당장 갈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보지만 ‘현실은 오로지 모를 뿐’이 정답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가능하면 빠른 시간에 그 길이 뚫릴 것을 기대할 따름입니다. 나를 비롯한 백두대간을 종주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더 늙기 전에, 혹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숙제를 풀 듯이 완성된 백두대간을 이루고 싶을 것입니다.

늙기 전에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 친구가 자기와 함께 산행하는 파트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친구의 파트너는 나이가 여든 하고도 다섯인데 걷기는 물론 암벽등반도 한다며 사람들의 입이 더 벌어질 정도의 산행 경력을 줄줄이 자랑하듯이 풀어냅니다.

하루에 열 몇 시간 산행에도 지치는 기색이 없으며 설악산을 본인이 팀을 인솔해서 구석구석 다니고 릿지등반은 물론 암벽등반에서도 펄펄 난다고 합니다. 그에게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는 궁금했습니다. 나도 산이라 하면 남 못지않게 탄다고 자타가 인정하는데 과연 그 나이에도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친구의 연락에 즉시 회답이 왔고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도봉산 왕언니 신옥자. 연세로 보면 당연히 할머니라고 해야 하나 도저히 저절로 할머니라는 말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젊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나이 마흔에 산행을 시작했다고 하니 올해로 산행 경력은 마흔다섯 해이고 국내산은 물론이고 좀 난이도 있는 히말라야 트레킹도 진즉 다녀왔고 피크 등반을 못 해본 것을 아쉬워하며 당장이라도 갈 기세였습니다.

자세도 몹시 반듯해서 허리도 다리도 도저히 팔십대 중반으로는 믿어지지 않고 뒤태로는 잘 봐야 사십대로 보였습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젊은지 하이 소프라노에 하는 행동은 소녀 같기까지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까르르 웃고 또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기운이 있습니다.

남의 약점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만 극대화시키는 힘도 있습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로지 오늘.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그 세월을 사는 동안 얼마나 희로애락이 많았을 것이며 얼마나 사연이 많았을 것인가. 이야기는 끝이 없고 듣는 이들은 배꼽을 잡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몇 번의 위기와 몇 번의 기회가 있듯이, 그분 또한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냈고 거의 죽음 직전에 구세주처럼 산을 만났고 산에 인생을 맡겨버립니다. 모든 일정이 산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산과 타협이 안 되는 것은 돌아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뒤로 밀려납니다.

매일 출근하듯이 산으로 갑니다. 비가 온다고 출근 안 할 수 없듯이, 눈이 온다고 바람 분다고 감기몸살이 걸렸다고 결근할 수 없듯이 매일 빠지지 않고 천천히 그날 할 수 있을 만큼 오르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때로는 열 몇 시간씩 때로는 조금 짧게 항상 감사해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만났답니다. 산은 인자한 어버이고 든든한 연인이고 온 세상이었습니다.

산을 만나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돌아 볼 줄도 알았고 타인도 보였답니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1박2일 동안 내 집에서 먹고 자며 동네 앞뒤 산인 지리산을 함께 올랐습니다.
젊은이에 버금가는 패션 감각과 그에 못지않은 몸매, 걸음걸이는 또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지 당당한 그 모습에 저절로 자세를 바로잡을 수밖에 없겠다 싶습니다.

산을 오르며 그때그때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감동하고 실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흥이 나면 몸동작도 살짝 나옵니다.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에 밴 긍정적인 생각과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웃음. 함께하는 시간 동안 엄청 자극을 받았습니다,

“아 저럴수도 있겠구나. 아 저래야 하는구나. 나도 그래야 하겠구나. 저렇게 늙을 수 있다면 늙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비가 온다고 눈이 온다고 얼씨구나 게으름을 부린 나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나도 그분처럼 당당하게 나이 먹기를 기대해 봅니다.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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