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를 이끌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런데 한국 국적선을 몰고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를 한 인물이 해봉(海峰) 배순태(1925~2017) 선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해기사들에게 배 선장은 말 그대로 ‘인간 등대’ 같은 존재다. 그가 남긴 ‘최초’의 기록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192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말기 진해고등해원양성소에 들어간다. 해방 직전 졸업한 후 3등 항해사로 선원의 삶을 시작한 그는 1948년부터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교수(항해학)를 역임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해군사관학교 교수로서 해군 장교 양성에 나선다. 그리고 1953년 6월 갑종선장 면허장을 취득하고 대한해운공사 동해호의 선장이 된다. 이 배가 바로 세계일주 항해를 한 선박이다. 한국해양대 박물관이 그의 갑종선장 면허증을 전시하고 있는 것도 이 기념비적인 항해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배 선장은 1958년 한국 정부시행 첫 도선사 시험에 합격해 국가공인 도선면허 1호를 취득한다. 그는 인천항을 일터로 택했다. 인천항은 조수 간만의 차가 부산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당시 대형 선박이 드나들기 가장 힘든 곳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도선사협회 창립 및 초대 회장, 인천항 갑문 첫 시범도선, 최초의 자동차전용운반선 도선 등 숱한 기록을 세웠다.
위기도 많이 겪었지만 해원양성소 졸업 직전 일제 해병단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 요원으로 차출됐던 일화는 특히 섬뜩하다. 그는 “어뢰를 품고 연합군 군함으로 달려드는 훈련을 받았는데, 가치 없는 죽음을 당하기 보름 전 나라가 해방되어 살아남게 된 일은 천운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11일 운명을 앞두고는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뿌리까지 바다사람이었다. 그의 호는 ‘해봉’이지만 후배 뱃사람들은 ‘바다에 옹이를 박은 사람’이라며 ‘해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국해기사협회가 배 선장을 ‘올해의 해기사’로 선정하고 그의 흉상을 지난 24일 영도구 태종대공원 내 해기사 명예의전당에 헌정했다고 한다. 오는 31일 ‘바다의날’을 앞두고 한국 해운을 빛낸 거인의 삶과 그가 남긴 ‘백절불굴 철석정신(百折不屈 鐵石精神)’을 떠올린다. 생전에 그는 시세 70억 원에 달하는 땅을 모교인 한국해양대에 희사하고 떠났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