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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연필 내려놓기도 어려워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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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25 19: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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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는 아이들과 권정생 선생님의 ‘몽실언니’나 ‘점득이’를 비롯한 근현대사가 담긴 책들을 읽을 때면,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휴전은 전쟁을 쉬고 있다는 뜻이니까, 자칫 잘못하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는 전쟁 일어나면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로 갈 거예요.”

그러나 전쟁이 그렇게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일 리 없다. 나는 미안함을 무릅쓰고 아이들에게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한다. “비행기 타기도 쉽지 않을 텐데. 모두 몰려나오면 비행장까지 가는 것도 힘들걸. 가족들이 같은 비행기에 못 탈 수도 있어.”

아이들은 머릿속에 끔찍한 상황을 떠올렸다가 얼른 지워내고는 자기 가족만은 헤어지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가족 모두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나라가 단 한 곳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나라는 비행기나 배로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차례는 금방 올까? 차례가 와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이나 아기 안은 어머니가 있으면 어떡하지 ….”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려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은 불안과 초조로 목소리가 커진다. 전쟁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불만에 찬 질문을 쏟아낸다.

“그런데 전쟁은 왜 했어요?” “생각이 달라서 그랬지.”

“생각이 다르다고 전쟁을 해요?” “너희도 친구들과 생각이 달라서 싸울 때 있잖아.”

“그럼, 화해하면 되잖아요.” “근데 그게 복잡하고 어려워.”

“화해하는 게 뭐가 어려워요?”

전쟁이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과 전쟁의 끔찍한 상황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이들을 화나게 한다. 그 자리에 있는 유일한 어른인 나는 아이들의 화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아이들 말대로 가볍게 화해하고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네모난 큰 책상을 가운데 두고 네 면에 둘러앉은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눠 마주 보게 한다.

“자, 여기 가운데가 삼팔선이야. 너희들이 들고 있는 연필이 무기. 서로를 겨누고 있는 연필들을 내려놓으면 화해가 되겠지? 이제 화해해봐.”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서도 연필은 내려놓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먼저 내려놔야 다른 쪽도 내려놓을 것 아니냐고, 친구들과 싸웠을 때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있어야 화해가 쉽지 않냐고 말해도 아이들은 못 내려놓겠다고 한다.

“먼저 내려놓는 게 안 되면 동시에 내려놓자. 셋까지 세면 양쪽 다 바로 내려놓는 거다. 하나, 둘, 셋!”

모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셋을 세도 연필을 내린 아이가 없다. 여전히 연필을 쥐고서 웃고만 있다. 왜 연필을 내리지 않았는지 들어 본다.

“나는 내려놓았는데 상대방이 안 놓으면 어떡하나 불안해서 못 놓겠어요.”
한 명이 말하자 양쪽 아이들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완벽하게 공감한다는 뜻이다.

“남과 북도 그래서 서로를 겨누고 있나 봐. 서로 상대방을 못 믿는 거지. 게다가 남북 둘만 싸웠던 게 아니라서 화해가 더 힘들어.”

아이들이 말이 없다. 휴전과 분단이 지속되는 이유를 충분히 알겠다는 표정들이다. 올해는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북이, 북미가, 이전과는 다른 관계로 나아가 아이들과 끝나지 않은 전쟁 대신 유쾌한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학이면 심심찮게 아시아 어느 나라, 혹은 유럽 어느 나라, 혹은 미국이나 캐나다를 다녀 왔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마도 곧 북녘의 어느 곳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조차 얼마나 힘겨운지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 조마조마하게 나아가고 있는 중에 예정되었던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쥐고 기도를 했다가, 아이들이 나한테 했던 것처럼 화를 냈다가 하며 한동안 마음을 진정하려 애썼다.

하긴, 싸우지도 않은 아이들이 잠깐 겨누었던 연필을 내려놓기도 어려웠는데, 오랜 세월 끌어왔던 휴전 상태를 끝내는 게 쉬울 리가 없겠지. 쉬우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거다. 그러나 온갖 난관 끝에서는 반드시 평화의 빛을 만나게 될 것이다. 크게 숨 들이쉬고 마음도 크게 먹어야겠다. 아이들에게 거센 항의를 조금은 더 들을 각오도 해야겠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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