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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소확행(小確幸), 자아 찾기, 그리고 좋은 정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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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20 18:40:56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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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가 최근 유행이다. 출세·성취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 현대사회 피로감에 찌든 한국인들 ‘느림과 비움’에 눈을 떴다. 과거 ‘웰빙’‘힐링’과도 일맥상통.


‘북핵 해결 항구적 평화’라는 담론도 국민 개개인 ‘소확행’의 토대요,‘사람 중심 경제’도 ‘소확행’ 확대를 위한 정책일 터. 시민이 올바른 정치인 뽑아야 행복 안겨줄 정책 기대할 수 있다. 그대, 소확행 누리려면 지방선거 올바른 투표하소서.


   
창밖엔 초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좁고 퇴락한 마당 가의 아왜나무는 스타트라인에 선 스프린터처럼 꽃필 준비를 이미 마쳤다. 시간이 더 흐르면 하얀 치자도 만개해 은은한 향기를 퍼트릴 거다. 그리고 지금 나는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채워 찔끔찔끔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기 전, 마땅한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했더랬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는 한편 미국에도 자기네를 너무 몰아붙이면 ‘북미회담’을 재고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 강원랜드 채용 비리를 수사하던 수사단과 검찰총장이 정면충돌했다는 게 이 시간 현재 주요 뉴스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거대 담론(?)에 내 말 한마디 얹는 게 왠지 부질없다는 느낌이 드니 별일이다. 비 내리는 봄날이어서 그럴까. 비에 젖은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의식의 장막을 뚫고 튀어 오르는 단어가 있다.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라던가.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출세나 성취에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자는 주장이다. 올해 들어 유행어가 된 말이라고 들었다. 이 단어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도 이제는 경제적 풍요, 사회적 출세 등을 좇아 자기 정체성을 잃고 정신없이 사는 것에 넌더리를 내면서 ‘느림과 비움’의 삶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소확행’이란 말의 저작권자(?)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한다. 그의 에세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 등장한 말이라나. 하루키가 정의한 ‘소확행’은 이런 거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나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 그러니까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지금 나의 ‘소확행’은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 향기를 맡는 것. 혹은, 우산을 받치고 마당 구석에 쭈그려 앉아 갓난아이 손바닥만큼 자란 깻잎과 차조기를 들여다보는 것. 돌보지 않아도 저 홀로 씨를 흩뿌려 절로 자라선 입맛 떨어지는 여름날 짭짤한 반찬거리가 돼 주니 고놈들 참 기특하다.

하고 보면, ‘소확행’을 주제로 삼은 TV 예능프로그램을 본 기억도 있다. 제목이 ‘숲속의 작은 집’이던가, 남녀 배우가 외딴 산골의 작은 집에서 혼자 살아보는 프로그램 말이다. 전기, 가스, 난방이 없는 집에서 출연자들은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고 산다. 그러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빗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는 것뿐이겠다.
얼마 전엔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본 적도 있다. 교사 임용시험, 연애 따위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도시에서의 피로한 삶을 그치고 시골의 빈집으로 돌아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함께 제 손으로 키운 농작물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는다는 줄거리. 양념과 소금을 치지 않은 음식처럼 얼핏 심심한 영화였다.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직접 만든 소박한 밥상에서 휴식과 위로를 찾는다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깨움을 주는 것이었다.

뜯어보면, ‘소확행’과 비슷한 함의를 가진 말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도 2000년대 초기엔 ‘웰빙’이란 말이 유행했고, 7~8년 전엔 치유를 뜻하는 ‘힐링’이란 말이 널리 퍼지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다. ‘충분한’ ‘알맞은’이란 뜻을 가진 스웨덴어 ‘라곰(lagom)’은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의 경향을 뜻한다고. ‘고요한’ ‘한적한’을 뜻하는 프랑스어 ‘오캄(au calme)’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심신이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일컫고, 덴마크어 ‘휘게(hygge)’ 역시 가족이나 친구, 또는 혼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을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소확행’은 세계인 모두가 꿈꾸는 삶의 형식이 아닐는지.

내 기억으론 ‘소확행’에 대한 욕구가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한 때는 아무래도 1997년 몰아닥친 ‘IMF 관리체제’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1950년대의 전란과 절대빈곤을 거쳐 1960, 70년대엔 가난을 몰아내자는 게 우리의 지상목표였지 않았나. ‘잘살아 보세’란 눈물겨운 구호가 방방곡곡 메아리친 시절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고 자가용이 생기면서 맺힌 한을 풀겠다고 한 10년간 미친 듯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데 탐닉했던 게 우리네의 자화상이 아니었나.

그러다 우리 사회에 안겨진 첫 ‘집단좌절’이 바로 ‘IMF사태’였던 거다.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서고,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같았던 대기업이 도산했으며, 줄줄이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우리네 삶이 기실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았다는 걸 그때 다들 절감했던 거다. 돈을 좇아 부나비처럼 불 속으로 뛰어든 것, 새벽부터 심야까지 회사를 위해 야근하는 삶이 부질없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느림’과 ‘비움’의 삶이랄까, ‘웰빙’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퍼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는 ‘행복총량제’란 그다지 근거 없는 운명론(?)을 신봉하는 편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 똑같은 양의 행복을 짊어지고 나온다는 것. 돈이나 출세를 향해 달리는 사람은 그 영역에선 성취감을 느낄지라도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어울리는 행복은 결핍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사람은 제게 주어진 만큼의 행복을 알뜰히 쪼개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뭐 그런 이야기다. 하기야 누군들 그걸 모르겠나. 우리네 사는 꼴이 팍팍하니 뜻대로만 삶이 꾸려지지 않는 것을.

어쨌거나, ‘소확행’이란 말이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건 경주마처럼 시야를 차단당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대한 피로 때문이겠다. 좀 더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성찰이 시작됐다고나 할까. 치렁치렁 필요 없는 스펙을 쌓거나 다 쓰지도 못 하고 죽을 돈을 모으느라 아까운 삶을 낭비하지 않는 것, 그래서 산을 오르다가 길섶에 핀 야생화 하나라도 들여다보며 작은 행복을 찾겠다는 건 우리 모두의 꿈이 아닐는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소확행’이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해서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취업이나 집 장만을 포기하는 대신 눈앞에 주어진 작은 행복에 만족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슬픈 라이프 스타일을 대표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니 마음에 걸리는 구석도 없지는 않다. 요즘 ‘Normal(보통의)+Crush(반하다)’를 합친 신조어 ‘노멀크러시’란 말이 유행이라는데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질린 젊은이들이 소박함에 눈을 돌리는 현상을 뜻한다고.

이런 현상을 반영한 유행어가 ‘아무나 되기’라고도 한다. 아등바등하지 말고 ‘노바디(Nobody)’의 삶을 살아도 좋지 않으냐는 거다. 경쟁에 부대끼며 남의 시선에 쫓겨 원치도 않는 삶을 쟁취하느라 자기 정체성을 잃는 사람들에겐 ‘아무나 돼도 괜찮아’라는 말은 신선하게 들릴 법하다. 위안이 될 것도 같다. 그러나 행여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서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자기방어의 기제로 작용한다면 짜장 걱정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글쎄, 내가 ‘꼰대 세대’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노파심만 뺀다면 ‘소확행’은 좋은 말이다. 지나친 욕구를 줄이고 쓸데없는 소비를 삼가고, 하루하루 일상을 충실이 살아가는 게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라는 거대 담론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소확행’의 근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논리의 비약일까. 문재인식 ‘사람 중심 경제’도 ‘소확행’을 확대하자는 정책일 터다. 지방선거도 결국은 시민의 안전과 일상적 행복을 챙겨줄 사람을 뽑자는 것. 그럼 진짜 ‘소확행’은 좋은 정치에서 나온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되나. 순환론일 수도 있겠지만, 시민의 정치 참여가 중요한 건 바로 우리네 자신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되씹어보는 비 오는 봄날 오후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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