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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하늘의 길 /하창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18 20:59:52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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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의 추사고택과 아산의 이충무공묘를 둘러보고 천안에 들어서니 날이 저문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상록리조트 정류소에 내리니, 안내판에 찾아가려던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담헌(湛軒) 홍대용의 생가터인 ‘홍대용생가지(生家址)’에 예기치 못했던 ‘홍대용과학관’이 덤으로 붙어 있다. 길가의 아카시와 밤송이와 들딸기 등에 한눈을 팔며 한참 걷다보니, 오른쪽 언덕 위로 최근에 지은 듯한 홍대용과학관이 보인다.

개장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중년의 직원은 안으로 들여보내 주고, 2층 전시실의 천문사진도 보게 해준다. 생가지를 물었더니 과학관을 나서 아래쪽의 조그만 공터를 가리키며 집은 없고 터만 남아 있다고, 집채가 없는 것이 마치 자기 잘못이기라도 한 양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인간미에 몇 번이나 감사의 뜻을 전하고 과학관을 내려가 생가지의 초석과 둘러선 대나무와 소나무를 담헌의 자취인 양 살펴보고 왔던 길을 되짚어 나온다. ‘홍대용묘소’가는 길에서는 꽃을 피운 자귀나무와 싸리나무를, 꽃을 지우고 이제 막 열매를 달기 시작한 대추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묘소 입구에서는 열매의 부피를 늘리고 있는 모과나무를 보기도 한다. 묘소는 부부 합장의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묘소 조금 떨어진 아래쪽에는 밭 전체가 호박으로 뒤덮인, 보기 드문 호박밭이 보인다. 묘소를 돌아나오는 길에는 산수유가 작은 열매를 촘촘히 달고 길을 지키고 있다.

담헌은 왜 유달리 천문과 여행에 관심이 많았을까. 그는 혹시 중국 한나라 때 유안(劉安)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까. ‘대개 한 모퉁이의 자취만을 따르고 하늘과 땅을 따라 유람할 줄 모른다면 의혹되는 것이 막대한 것이다’. (이준영 해역)

그는 두보의 시에서 따 붙인 ‘농수각’이라는 사설 천문대에, 아버지 홍력의 목사 부임지 나주에서 만난 나경적의 도움을 받아 혼천의와 자명종을 설치하고, 숙부 홍억을 따라간 북경에서 만난 육비의 기문을 받아 두기도 한다. 북경에 이르러서는 곧장 천주교당을 방문하고 그곳을 관리하는 할러쉬타인(중국명 유송령) 등의 선교사들을 수차례 만나 서학과 천문기기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과거와 벼슬, 붕당과 소리(小利)로 점철된 땅에 회의를 느낀 이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저 먼 이국 땅과 하늘이 아니었을까. 이때 하늘의 모습은 땅의 이치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고, 먼 곳은 가까운 곳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추의 시금석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야간 비행을 하며 대지에 흩어진 불빛에서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본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애잔해진 눈빛과 함께.

담헌이 견지한 지원설(地圓說)과 지전설(地轉說)과 같은 천문학적 주장은 천문학적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지구가 둥글고 게다가 돌기도 한다면 중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중화니 오랑캐니 하는 화이론(華夷論)과 이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조선의 소중화 (小中華) 의식도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나아가 춘추대의니 대명의리니 하는 것도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더구나 우주무한설은 모든 존재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주의를 강화한다. 인간 중심주의와 인간 우위를 넘어서면서 초목과 사물도 인간과 균등한 존재가 되고, 인간 내부의 신분제를 지우며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재가 된다. 모든 인간이 노동을 하고 교육의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면 송대 이래 주자학에 매몰되어 불가나 도가 등을 이단시하던 조선의 선비나 양반들에게 신분제를 토대로 벼슬과 권력을 독점하던 벌열과 세도가들에게 충격을 가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집중적으로 드러난 글이 ‘의산문답’과 ‘임하경륜’이다.

담원과 같이 김원행의 문하였지만 소중화주의에 사로잡힌 자들을 대변하던 김종후는 앞선 문물의 청을 오랑캐로 치부하고, 담헌이 청에 벼슬을 하려던 엄성이나 반정균 등과 사귄 것을 비난하며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 사귐만을 백안시했겠는가. 높고 멀리 떠나 제대로 된 길을 찾고자 하는 자, 곧 지혜로운 자에 대한, 좁고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지키고자 하는 자들, 곧 어리석은 수구주의자들의 반격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다시 회남자의 인간훈에 나오는 구절을 음미했어야 할 듯하다. ‘지혜로운 자는 길을 떠나도 길을 만나고, 어리석은 자는 길을 지켜도 길을 잃게 된다’. 그 지혜로운 자들은 홍대용의 여행길을 따라 모여 이른바 북학파가 된다. 박지원, 김용겸, 정철조, 원중거,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이서구 등이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사소한 이익보다 청의 번화한 문물에 대비된 조선의 비참한 현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도보여행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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