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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도심, 걸을 수 있어야 빛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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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17 19:25:0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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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부터 걷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 좋은 것을 보기 위해, 또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걸음으로써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공동체와 지역에 다양한 이익이 생겨남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진리 아닌 진리에 대한 확신과 공감이 많이 부족한 상태다. 분명한 것은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건강해지고, 걷고 싶은 곳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도시는 활력을 얻게 되고 지역경제 또한 발달한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이행된 ‘보행화’ 프로젝트들의 최종 결론은 모두 성공이다. 보행화로 인해 지역 정체성이 확립되고 상업이 번성하고 문화예술이 발전하는 것은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물론 보행화의 정도와 품격, 보행화의 아이템과 그 속에 담긴 콘텐츠에 따라 과정과 결과는 조금씩 달라진다.
   
부산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부산은 페스티벌(festival)이 아닌 카니발(carnival)이 어울리는 도시라 한다. 그만큼 부산은 야외활동, 즉 좋은 날씨와 바다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하는 도시임이 강조된다. 부산을 걸을 때 유일한 맹점으로 지적되는 많은 경사길과 높은 계단길에 대한 다양한 극복 대안이 마련되고 있고, 오히려 이 맹점이 운동을 위한 좋은 조건이라는 인식이 생겨날 정도이니, 부산은 이제 보행화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제대로 준비하고 실천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좋은 도시를 행복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21세기의 모든 도시가 가지고 싶어 하는 열망이고 희망사항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선망하는 도시들 대부분은 보행이 발달한 도시다. 걷는 것이 즐거운 도시다. 이 사실 속에서 두 가지의 명제가 확인된다. 하나는 ‘걷기 힘든 도시는 국제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걷기 쉽고 즐거운 도시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도시에 있어 보행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더군다나 걷기의 대상이 ‘도심(都心)’이라면 경제, 문화, 환경적으로 여러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행 도심들을 살펴보았다. 그 도심들의 보행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선형 루트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지역 명소들을 방문하는 방식’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유명 장소와 풍경, 괜찮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함께 조합되어야 한다. 한 곳만 소개한다면 타워브리지를 사이에 두고 세인트폴성당, 테이트모던미술관, 런던시청, 버틀러선창과 창고군, 런던성을 하나로 묶은 런던 동쪽의 템스강변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보행의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한 후 혁신적인 보행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보통 수평 보행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나 철도를 땅속으로 밀어 넣거나 위로 들어 올린다. 보스턴의 빅 딕(Big Dig) 프로젝트! 6차선 도심 도로와 고가도로의 지하화를 통해 교통문제 해결과 60만 제곱미터의 공원녹지 증강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내륙(도심)과 워터프런트의 보행 통합이 이루어져 도시경제를 혁신시킨 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 번째는 ‘차를 차단하고 사람만 다니게 하는 방식’이다(버스나 전차는 다닐 수 있다). 도심의 토지소유주나 경영주가 손님이 오지 않을까 봐 가장 두려워하는 방법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차를 막으면 막을수록 장사가 잘된다는 것은 전 세계에 알려진 진리다. 리버풀은 2008년 유럽문화수도 선정을 계기로 기차역에서 항구에 이르는 약 10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도심을 완전한 보행구역으로 전환하는 특별한 도심재개발을 추진했다. 몰락하던 리버풀 경제가 반전된 것은 물론, ‘The World in One City’라는 비장한(?) 슬로건 속에서 글로벌 도시로서의 재도약까지 이루어냈다. 네 번째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곳을 어슬렁거리며 기웃거리게 하는 방식’이다. 돈이 별로 들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데 흉내 내기는 어렵다. 나가사키의 사루쿠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개항장인 나가사키의 50여 지역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동네지도를 그리고 재밌는 보행 루트를 만들어 놓았다. 역사적인 카스텔라 가게, 오래된 버드나무, 옛 기억을 떠올리는 비석들, 심지어는 그곳 골목에 사는 길고양이들까지 그려 놓았다.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걷는다.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다닌다. 이런 것을 보행문화관광이라 한다.

네 가지 모두 만만치 않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엄청난 투자와 단합의 인내가 필요하고, 첫째와 세 번째는 지역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관의 창의적인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보행화의 성과가 다소 모호할 수 있기에 이의 극복을 위한 관의 혜안과 지역민의 결단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뿐 아니다. 네 가지 방식 모두가 가져야 할 공통의 조건들이 있다. 첫째는 ‘365일 보행 활력을 유발하고 작동하는 거점의 존재’다. 연결 브리지나 광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곳만의 특별함이 반영된 거점은 유·무형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는 ‘도심 활력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신산업과 새로운 사람들의 존재’다. 여기서의 신산업은 거창한 것이 아니며, 작은 가게들과 골목경제가 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 셋째는 ‘특별 장소와 스토리의 존재’다. 요즘은 진정으로 진실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보행화 또한 오래된 장소들과 그 속에의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다면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부산의 그런 곳들을 떠올려 본다. 영도다리 좌우 남포동에서 대평동(봉래동)으로 이어지는 남항 일대, 문현금융단지(서면)에서 부산시민회관과 55보급창을 거쳐 자성대부두로 이어지는 동천-북항 라인, 수영성에서 망미삼거리를 거쳐 F1963과 센텀시티를 잇는 수영강변 일대 등. 부산의 도심들은 이미 다양한 삼포(三抱)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기에 보행화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런 부산이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시민들이 도심을 활보하게 해야 한다. 재미 없는 도심,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도심을 이젠 잊게 해야 한다. 그것은 부산의 도심, 아니 부산을 살려내는 특별한 지름길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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