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문명의 이기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카페리(Car Ferry) 역시 ‘전쟁의 산물’이다. 직접적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덩케르크 철수(Evacuation from Dunkirk)’에서 찾을 수 있다. 1940년 5월 영국군은 뼈아픈 퇴각을 하게 된다. 독일군에 밀려 프랑스 북부-벨기에 해안의 덩케르크 일대에 고립된 영국군은 천신만고 끝에 33만8000명의 병사를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에 그 장면들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영국군 수뇌부는 ‘절반의 성공’으로 인식했다. 전차 대포 등을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반격을 위해서는 백사장에 장갑차와 전차, 병사를 함께 내려줄 ‘상륙수송함(LST)’이 필요했다. 1942년 12월 세계 최초의 상륙수송함 ‘HMS Boxer’는 이렇게해서 탄생했다. 이 배는 전차 13대, 차량 27대, 병사 200명을 운반할 수 있었다. 미군까지 LST 건조에 뛰어들면서 연합군의 유럽 대반격이 힘을 받게 된다.

종전 후 LST를 개조, 사업을 펼치기 위해 영국 해군 퇴역 대령인 프랭크 버스타드가 나섰다. 그는 1946년 군으로부터 LST 4대를 사들여 개조한다. 이 과정을 거쳐 1948년 5월 21일 ‘엠파이어 도닉 호’가 영국의 프레스톤(Preston)~ 란(Larne) 노선에서 차량과 승객(50명)을 싣고 영업을 시작한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카페리다.

국내 카페리의 역사는 1977년 4월 14일 부산~제주 노선에 취항한 일본산 중고선박 동양고속훼리 1호가 시초다. 현재 국내에서 운항 중인 카페리는 8척. 그런데 8척 모두가 일제 중고선박이다. 700억 원 안팎의 신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늘 선박안전 문제가 걸림돌이 된 것도 당연하다. 세월호 역시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되고 2012년 퇴역한 것을 청해진해운이 2013년 수입한 중고였다.

부산의 향토기업인 대선조선이 그제 영도조선소에서 국내기술로 설계 및 건조한 최초 카페리인 ‘실버클라우드호’의 진수식을 가졌다. 길이 160ｍ 너비 24.3ｍ에 승객 1200명과 자동차 150대를 실을 수 있는 1만9000ｔ급 대형 카페리다.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연안여객선 현대화 펀드’ 지원을 받았고, 제주~완도 노선에 취항할 예정이다. 모든 카페리의 국산화로 조선소도 살고 안전에 대한 신뢰도 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