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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역사로부터의 자유 /전진성

견제와 균형의 민주국가, 지배층 권력분할이 아닌 견고한 결합이 더 중요…역사 답습이 능사 아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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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02 20:06:07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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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걸핏하면 태업을 일삼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청와대의 독주를 지적하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내세워서 국민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 민주국가의 기본 원칙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상위의 원칙이 전혀 아니며,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에 가깝다.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 나쁜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지배층 내부에서의 권력 배분만으로 민주국가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3년 저서 ‘혁명론’에서 미합중국의 탄생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논하며 국가권력과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해 고찰한 바 있다. 아렌트에 따르면 미합중국은 단순히 연방제 국가가 아니라, 그 이름이 표방하듯이 연방주들 간의 강고한 결합으로 탄생했다.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의 건국 선조들은 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의 국가론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의외로 권력 분할이나 정부의 형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삼권분립이나 혼합정부론 등은 이미 고대로부터 전해진 학설로, 이 정도의 낡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몽테스키외에 천착했을 리는 없다는 것이 아렌트의 견해이다. 미국의 건국 선조들이 주목한 것은 오히려 국가 권력의 증대였다. 무리한 중앙집권보다는 각자 주권적인 13개 연방주 간의 결합이 훨씬 강대한 권력을 창출할 수 있었다. 권력의 분할이 아니라 구축이 관건이었던 것이다. 내외적인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헌정 질서의 구축이야말로 미국 건국 선조들의 업적이었다고 아렌트는 평가한다.
아렌트의 ‘혁명론’은 근대 혁명의 규범으로 간주되어온 프랑스혁명을 평가절하하고 혁명론의 계보에서 제외되어온 미국 독립혁명을 칭송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프랑스혁명은 부자와 빈자의 투쟁이라는 인류사의 뿌리 깊은 질곡을 재연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새롭지 않았던 데 반해 오랜 사회적 적대와 봉건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에서의 혁명이야말로 진정으로 새로운 출발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 개념의 새로운 의미에 걸맞은 유일한 혁명이었다. 서구 문명에서 ‘혁명(revolution)’ 개념은 본래 천체의 회전을 가리키던 말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도 사용한 바 있는데, 점차 정치적 개념으로 전이되면서 좋은 옛 체제의 부활이라는 의미로 변환되었다가 근대의 정치적 격변을 거치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렌트가 보기에 프랑스혁명의 문제점은 빈곤층의 사회적 해방이라는 낡은 이상을 부활시켰다는 데 있다. 낡은 혁명관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빈곤의 문제는 비탄과 증오가 아니라 정치적 권리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마땅했다. 근대적 ‘혁명’의 진정으로 새로운 점은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헌정 질서의 구축이었다. 성공한 봉기와 혁명을 구별시켜주는 점은 바로 ‘정치적 자유’라는 대의였다. 이렇게 볼 때 미국 건국 선조들이야말로 권력과 자유를 통일시킨 진정한 혁명가였다.

아렌트의 다분히 보수주의적인 혁명론은 오늘날에는 수용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렌트는 미국 독립혁명이 교조적 원칙 대신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강조한다. 이에 반해 프랑스혁명에서 러시아혁명에 이르기까지 혁명의 주역들은 늘 정치적 행위자가 아니라 역사의 집행자로 자처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마력’에 빠져 있는 한, 결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예컨대 철학자 헤겔은 1789년 프랑스혁명을 ‘천상과 지상의 화해’로 칭송한 바 있는데, 이 말은 마치 천체운동과도 같이 필연적이고 숭고한 이념이 지상으로 내려와 구현되었다는 투로 들린다. 혁명을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오랜 염원의 실현으로 보는 낡은 발상이다. 이러한 발상은 20세기로 이어졌다. 아렌트는 “러시아 혁명가들이 프랑스혁명에서 배운 것은 역사이지 정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과연 남의 나라 얘기일까.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리고 좀 더 민주적인 정치와 사회의 건설을 재촉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또다시 역사에 의존해야할까.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되새기고 1948년 제헌헌법의 우수성에 감탄하며 그간의 잃어버린 세월을 만회하고자 경주해야할까. 1987년 노동자 대투쟁도, 2008년과 2016~2017년의 촛불항쟁도, 그간 10년간 지속되어온 밀양송전탑 반대투쟁까지도 결국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한 노력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걸까. 우리는 과연 언제야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역사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떠한 국가를 꿈꾸는가.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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