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피아니스트인 임동혁 씨는 수년 전 뉴욕의 집에서 피아노를 도둑맞았다. 당시 시세로 1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던 야하마 피아노가 깜쪽같이 사라졌다. 얼마 뒤 피아노를 되찾긴 했지만 임 씨는 고가 여부를 떠나 애장품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실의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임 씨와 같은 전문 음악인들에게는 ‘명필이 붓을 탓하랴’는 말이 어쩌면 남의 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훌륭한 악기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더 발휘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만큼 연주자들에게 좋은 악기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일반인들이 유난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명품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자기타로 범위를 좁히면 이 분야 최강자는 미국의 ‘깁슨’이다. 깁슨기타는 음악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낸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에릭 클랩튼 등 전설적인 음악인들이 애용했던 기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비비 킹이라는 유명 가수는 숙소에 큰불이 났음에도 방에 둔 깁슨기타를 구하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후일담까지 남겼다.

창립 후 100년 넘게 고급 기타 제작 회사의 대명사로 통했던 깁슨이 얼마 전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제출했다. 기타 판매 감소에 따른 매출 저하를 만회하려 무리하게 사업을 다각화했던 게 재정난 심화로 이어졌다. 채권단은 악기 외 비주력 부문을 정리하면 회생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깁슨의 장래에 대해서는 비관적 전망이 더 우세하다. 제품의 위상은 여전히 굳건하나 음악계 흐름이 기타 연주가 불필요한 컴퓨터 중심으로 넘어간 이상 옛 영화를 다시 누리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 기타 한 대를 만드는 데 한 달씩 걸리는 현재의 수공업 체계를 버리지 않는 한 생산력 감소는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깁슨의 실소유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헨리 저스키위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판단에 문제가 있었으며 전적으로 나의 실수”라고 언급했다. 지나치게 이름값에 매달린 나머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던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깁슨의 파산보호 신청은 카메라 필름 및 휴대전화 분야에서 우리가 최고라며 자만하다 한순간에 몰락했던 코닥과 노키아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 기업의 말로를 깁슨 경영진은 과연 몰랐던 것일까.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