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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내 안의 편견 깬 90세 할머니 /황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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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29 19:23:58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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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선 할머니는 언뜻 봐서 70대 중반을 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우리 나이로 90세라 했다.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에 뽀얀 얼굴에는 주름도 심하지 않아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깔끔한 옷차림에 예쁜 지갑까지 영락없는 귀부인이었다. 그런데 밑이 빠지고 변을 참지 못하며 속옷에 변이 흘러 견디지 못해 병원에 왔다 했다.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같이 살고 있는데 며느리가 아프기 시작해 곧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상황이었다. 아들은 직장에 가야 해서 혼자 오셨다. 며느리 아픈 것도 큰 고민이지만 투병이 시작되면 오래갈 것 같고 정작 자신의 불편함에 대해 가족들에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잘못해서 치료 시기를 놓칠 것 같아 걱정이라 했다. 상태가 나빠지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되면 며느리가 투병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치료를 받고 싶다 하였다. 조곤조곤 기승전결 깔끔한 표현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90세 할머니의 사연은 이상한 매력으로 필자를 흥미롭게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할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드렸다.

할머니의 병명은 직장탈출이었다. 직장탈출을 오랫동안 방치하여 항문 괄약근이 약해졌고 골반 바닥이 내려앉으면서 변실금이 와 버린 것이었다. 여성에게 잘 발생하는 노인성 변실금은 외견상 보이지 않는 젊은 시절의 분만에 의한 잠재적 손상에서 시작된다. 오랜 퇴행성 변화로 골반 바닥 근육이 약해지고 직장탈출과 같은 골반 장기탈출이 진행되고 항문직장 주위 지지 근육과 신경 감각의 기능 저하를 가져오면서 변을 참는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노인성 변실금은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당황하게 만든다. 변 실금은 전 인구의 약 8%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대부분 환자가 여성이다. 여성의 출산은 골반 근육과 신경의 손상을 동반한다. 초산의 35%, 다산의 40%에서 괄약근 손상이 발생하고 젊은 시절에는 증상이 없다가 오랜 기간의 잘못된 배변 습관, 식습관, 생활습관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퇴행성 변화의 일종이다. 변실금을 경험하면 그 심리적 스트레스는 심각해진다. 자신에게 나는 기분 나쁜 냄새와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되는 실수에 대한 악몽으로 외출을 삼가게 되고 스스로 격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방치하여 신경 기능 저하까지 진행되면 정상적인 치료로 해결되지 않기도 한다. 치료 기간도 6개월 이상 걸리며 치료 실패율도 20%를 훨씬 상회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로 매우 급작스레 진행되었다. 이미 우리의 고령 인구의 비중은 세계 5위, 초고령 인구의 비중은 세계 3위이다. 기대 수명은 82.1세로 미국, 영국, 독일은 물론 OECD 평균(80.6세)보다 길다. 유병장수이든 무병장수이든 노인 인구가 증가하였고 과거 몇십 년간 심·뇌 혈관계 질환, 관절, 척추, 재활 분야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였다. 그러나 정작 드러내 호소하기 어려운 여성의 골반바닥 질환(직장탈출, 자궁탈출, 방광탈출, 변실금, 요실금)을 통합해서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식은 미미한 편이다.
   
절대 간단하지 않은 수술이었음에도 할머니의 회복은 매우 빠르고 훌륭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병원에서 지켜야 할 원칙에 잘 따르고 자기 관리도 철저했으며 주변 환자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아 할머니의 입원병실 분위기도 훈훈했다. 어른 대접을 받기도 싫어했고 투덜대는 일도 없으셔서 병동 간호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처음 할머니를 뵈었을 때 왜 혼자 오셨냐며 아들을 데려오라 했었다. 고령의 환자에게 발생 가능한 안전사고에 의료진들은 민감하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들 없이 치료를 진행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내가 약간 쑥스러워진 셈이다. 엷고 청량한 미소에 항상 깔끔하게 나타나는, 아마도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더 사실 것 같은, 살아계신 동안 다른 사람의 신세는 지지 않으실 것 같은 이 90세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필자의 마음은 상쾌해진다. 왠지 어렵게 생각했던 환자의 치료 성공담에 의사들은 성취와 보람을 느끼며 산다.

부산항운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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