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야 할 봄날은 미세먼지에 뒤덮여 짜증을 부르고, 우리 사회는 하루하루가 충격의 연속이다. 온갖 잡스러운 성추문과 갑질로 정치인, 교수, 재벌 오너가, 종교인 할 것 없이 지도층의 부끄러운 민낯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댓글 조작 사건은 그 후폭풍이 어디로 어떻게 불어닥칠지 짐작하기 어렵다. 드루킹 의혹은 숨기고 덮고 감싸고 할 사안이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 얼렁뚱땅 묻혀 넘어가서도 안 될 말이다. “갑질 문화는 국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적폐”라며 대한항공 일가까지 비판한 문재인 대통령은 최측근 김경수 의원이 연루된 드루킹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기식 사태는 또 어떤가. 드루킹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사그라져서 그렇지 문 대통령의 편향된 인사를 잘 보여준 대목이다. 임명 18일 만에 금융감독원장직에서 낙마한 김기식뿐만 아니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장, 홍일표 청와대 선임행정관, 김성진 청와대 사회혁신비서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이 참여연대 출신으로 꼽힌다. 권력 요충지마다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김기식 낙마를 두고 청와대의 제 식구 감싸기 참극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실 국민은 이렇게 많은 참여연대 출신이 현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줄 잘 몰랐을 것이다. 김기식 사태가 불거지면서 참여연대의 탄탄한 네트워크와 ‘권력화’가 드러났다. 특정 시민단체 출신의 정부 주요직 차지와 ‘내편’에 대한 관대와 두둔. 역대 정권이 왜 하나같이 실패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에 인사만큼 중요한 업무는 없다. 만기친람식으로 할 수 없기에 인재 등용은 국정의 핵심이다. 대통령은 장차관급과 1급 공무원 등 450여 명의 고위공무원을 직접 임명한다. 헌법기관 공무원, 국가 산하단체 공무원 등 약 2만5000명에 대한 임면권도 갖는다. 능력 위주의 대통합·탕평 인사는 국정 운영의 성패를 가르는 키다. 민주화 이후 역대 6명의 대통령이 결국 정치적 좌절을 맛본 것은 대부분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씨 등 특정 실세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초기 탕평인사 원칙이 무너지고 정권도 어려워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초 부산·경남 출신 위주로 기용을 한데다 차남 김현철이 ‘소통령’으로 불리며 정권 시작부터 국정에 깊숙이 개입해 각종 정책 결정을 주무르는 바람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났다. 정권 초기 측근 배제 원칙을 천명하고 지역을 따지지 않는 탕평인사를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어떻게 됐는가. 뒤로 가면서 청와대와 내각에 호남 출신 정치인과 관료의 활용을 늘렸다. 동교동계 가신들이 국정 운영의 주요 결정에 개입하고 당과 정부 요직을 독점했다. 정권 말기엔 급기야 세 아들이 모두 국정개입 의혹에 연루되면서 사법처리 되질 않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문성이 결여된 진보적 인사를 기용하는 이른바 ‘코드 인사’로 임기 내내 야당, 언론과 충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학연·지연에 배경을 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S라인(서울시 출신 관료) 인사로 잡음을 일으키면서 국민 신뢰를 잃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말하면 무엇하랴. 집권 기간 내내 ‘불통 인사’ 잡음이 끊이질 않더니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 드러나면서 영어의 몸이 됐다.
전직 대통령 치고 집권 초기 탕평을 외치지 않은 대통령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역주의 등에 기반한 편파, 당파, 보은, 회전문 인사는 물론이고 사조직을 국정에 개입시키는 ‘비선 인사’, 가신 그룹의 호가호위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정권의 위기를 자초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지금 참여연대 출신의 요직 점령은 이전 정권과 다른 것인가? ‘만사참통’과 같은 말이 벌써 회자되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다.
김기식 사태까지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이 여덟 번째 중도 낙마를 초래한 것은 인사검증에 진영논리가 개입된 탓이 크다. 그래놓고선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끼리끼리 조직문화’는 잘못이나 허물에 대한 불감증을 낳고, 그것이 미세먼지처럼 정권의 폐를 파고들어 병들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 불리한 사건에도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이전 정권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인사에선 ‘다름의 메시지’를 찾기 어렵다. 공평한 인사정책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