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건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을 쥔 건 문 대통령이 아닌가. 더 삼가고 더 살펴야 할 사람도 그다. 처음부터 청와대가 선선히 인선 실수를 인정하고 수습했더라면 스타일을 크게 구기진 않았을 터. 문제는 야당의 반발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해 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던 거다.
그는 지금 작두날에 올라선 무당과 같다. 그의 작두날은 또 있다. 개헌, 지방선거는 물론 ‘문재인 케어’를 두고 의료계와도 한판 싸움이 예고돼 있다. 청년실업 대책은 또 어떻고. 그래서 국정 운영을 다시 점검해 보라는 거다. 지지자보다는 비판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거다.
오래전 나는 굿 구경을 갔다가 작두 타는 무당을 본 적이 있다. 신내림을 한 무당만이 ‘작두타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영험 있다는 한 만신(萬神)이 새끼무당에게 손을 잡히고 맨발로 날카롭게 벼려진 작두날 위에 올랐다. 다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볼밖에. 그는 정말로 작두 위를 신들린 듯 겅중겅중 뛰었다. 그런데, 춤이 끝날 무렵 그는 한순간 삐끗했다. 날카로운 작두날에 베인 발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아!’하고 나지막한 신음을 냈지만, 그는 그래도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새끼무당이 친친 감아준 흰 천에 점점이 스며들던 선연한 핏자국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 작두춤이 떠오른 건 요즘 정국의 화두(?)가 되고 있는 ‘금융감독원장 김기식 낙마 사태’와 ‘드루킹 댓글조작 파문’ 때문이었다. 글쎄, 권력이란 건 말 그대로 작두날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권력이 클수록 그 작두날은 더 날카롭고 서슬 푸를밖에.
우선 ‘김기식 낙마’부터. 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돈으로, 인턴보좌관까지 대동해 공짜 외국 여행을 다녔다, 임기 말에 정치후원금을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자기가 소속한 정치단체에 기부했다 따위가 그 사유다. 문제는 사표를 수리하기까지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방식이 적잖은 아쉬움을 남겼다는 거다.
처음 야당이 아우성을 칠 때 청와대가 보인 반응은 이랬다.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잘한 건 아니지만 사임 사유까지 되지는 않는다.” 여론이 좋지 않자 청와대는 국회의원들이 16개 기관으로부터 지원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온 실태를 까발렸다. 자기네보다 자유한국당의 공짜여행이 훨씬 더 잦았다는 거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 아니냐”는 역공 작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의 다음 수순은 “김기식의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 선관위에 물어보자”는 것. 대통령의 입장문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항변했다.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도 토로했다.
대통령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건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을 쥔 건 문 대통령이 아닌가. 더 삼가고 더 살펴야 할 사람도 그다. 글쎄, 처음부터 청와대가 선선히 인선 실수를 인정하고 수습했더라면 스타일을 크게 구기진 않았을 터. 문제는 야당의 반발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해 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던 거다.
논란이 시작됐을 때 선제적으로 해임했으면 어떨까. 그런 다음,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 스스로 의원들의 외유실태를 전수 조사해 새 기준을 만들어 내라” 했으면 말발이 더 먹혔을 거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인기에 기대어 야당의 구린 데를 까발리고 지지자들의 반발을 유도하면 돌파할 거라 믿었던 청와대 참모진도 안이했다. 출구전략이었는지는 몰라도 ‘선관위 질의’는 내가 보기엔 하책이랄밖에. ‘주먹 맞은 감투’ 꼴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일이 치명상이랄 건 없겠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다.
그런데, ‘드루킹 댓글 조작 파문’은 집권 측에겐 훨씬 더 악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이렇다. ‘드루킹이란 필명을 가진 진보 성향의 인터넷 논객이 있었는데, 이 자가 그 동네에선 제법 세를 갖고 있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활동을 벌였던 그는 대통령 측근인 김경수 의원더러 아는 이에게 오사카 총영사 감투를 주라고 요구했다. 집권 측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현 정권을 공격하는 댓글을 올려 조회 수를 조작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웬 떡이냐며 지방선거 이슈로 몰아가고 있다. 한창 수사 중인데도 특검을 하자며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천막당사’를 또 펼치고 나섰다. 야당의 주장은 지난해 대선 때 집권 측이 조직적으로 댓글 부대를 운영해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거다. 그게 이명박·박근혜의 죄목 중 하나인 ‘국정원과 국군기무사의 댓글조작’과 다를 게 뭐냐는 거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아 단정하긴 어렵지만 내 보기에도 ‘드루킹’이란 자는 진보를 표방한 ‘댓글 브로커’ 같다. 솥뚜껑으로 자라를 잡는달까,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야당의 주장이 침소봉대 같다. 민주당이 자기네를 ‘까는’ 댓글을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는데 잡고 보니 그자가 민주당원이더라는, 일견 황당한 사태 전개를 보면 집권 측이 댓글 부대를 양성한 것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규명돼야 할 건 이런 것이겠다. 지난 대선 당시 드루킹 일당이 단순히 댓글만 달았느냐, 그때도 조작을 했느냐 여부. 댓글 조작이 있었다면 당시 더민주당이나 문재인 캠프가 알고 있었느냐 여부, 달리 약점 잡힌 건 없느냐 여부. 드루킹이 정상적으로 지지 활동을 펼쳤고, 선거 캠프가 순수한 지지자 그룹으로만 알았다면 그것만으로 크게 문제 삼기는 어려울 거다. 민주사회에선 누구라도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지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민간인의 댓글조작은 엄정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의 조작과는 차원이 다르긴 하다. 그래도 대선에서 조작이 있었고, 집권 측이 묵인했다면 법적·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임 정권의 댓글조작을 준엄하게 단죄한 현 정권도 알고 보니 비슷한 짓을 저질렀다, 만약 이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지금부터 대통령과 집권 측의 대응이 중요해진다. 의혹을 손톱만큼이라도 숨기려는 기미가 엿보인다면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거다. 행여 검찰과 경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봐준다는 인상을 줘선 큰일이다. 의혹이 석명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먼저 특검을 제안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결과 잘못이 드러난다면 집권 측은 상응한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박근혜 국정 농단’의 꼬리가 잡힌 경위를 명심할 일이다. 재작년 여름, 한 보수신문이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의 부동산 투기 혐의를 보도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된 게 아니었나. 그때만 해도 그게 박근혜 몰락의 신호탄이란 건 아무도 몰랐다. 박근혜가 우병우를 과감하게 자르고 국정을 일신했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 거다. 끝까지 시치미 떼고 꼬리 자르기에 골몰하다가 비극적인 사태를 자초했던 거다.
권력은 위태로운 것이다. 방심하면 베인다. 작두날에 잘못 올라타 치명상을 입은 전직 대통령을 우리는 두 명이나 보지 않았나. 역대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에 사고를 치곤 했다. 1년 동안 인턴(?) 기간을 거쳐 국정에 자신감이 붙는 순간 오만해지는 거다. 온 나라가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는 착각이 생기는 것도 그때다. 일이 터지면 야당을 탓하고, 언론을 탓한다. 문재인은 과연 ‘2년생 증후군’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대통령이 내놓은 ‘김기식 입장문’에 오만의 그림자가 언뜻 비쳤다면 그건 나만의 기우일까.
그는 지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란 세계사적 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성공하면 역사에 남겠지만, 실패하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는 지금 작두날에 올라선 무당과 같다. 그의 작두날은 또 있다. 개헌, 지방선거는 물론 ‘문재인 케어’를 두고 의료계와도 한판 싸움이 예고돼 있다. 청년실업 대책은 또 어떻고. 그래서 국정 운영을 다시 점검해 보라는 거다. 지난해 보여줬던, 겸손과 소통의 모습이 퇴색하고 있지 않나 되돌아보라는 거다. 지지자보다는 비판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거다.
신화의 기원을 밝힌 기념비적 저작인 J.G.프레이저의 ‘황금가지’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로마 근교에 성스러운 숲이 있었다. 그 숲에는 음산한 형상의 사람이 온종일 맴돌았다. 그는 사제인 동시에 살해당할 자였다. 사제를 죽인 사람이 새로 ‘숲의 왕(Rex Nemorensis)’이라는 호칭을 얻어 사제로 군림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사제를 죽여 사제직을 얻은 자는 또 다른 자가 자신을 살해하러 올 것을 항상 경계해야만 했다.
백성은 잔인하다. 기근이나 재난이 생기면 왕을 희생양 삼아 제단에 바친다. 그리고 새 왕을 뽑는다. 그래서 권력이 무서운 거다. 사제는 외줄타기하는 광대와 같고, 작두날에 올라선 무당과 같다.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소설가·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