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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잠자고 있는 ‘초량왜관’을 깨울 시간입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4-12 19:38:5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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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김의환, 이완영, 이현종, 김동철, 정성일, 이상규, 양흥숙, 장순순, 이훈, 다시로 가즈이, 부학주, 김강일, 박화진, 김순일, 윤유숙, 최차호, 강석환…. 이들은 초량왜관(草粱倭館)을 연구했던(하는) 역사학자이자 초량왜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려 340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초량왜관의 존재성과 진정성이 잊히지 않고 있다. 초량왜관은 삼포왜관(1407년)시대를 거쳐, 1547년 정미약조로 인한 부산포 단일 왜관시대의 절영도왜관(1598~1606년), 두모포왜관(1607~1678년)에 이은 우리나라 마지막 왜관(1678~1872년)이다. 이곳은 현재의 중앙동, 동광동, 광복동, 대청동, 신창동, 창선동 일대에 펼쳐졌던 조선왕조의 외교와 국방의 전초기지였다. 왜관 침탈사건(1872년) 이후, 마치 자기 땅인 양 소유권을 행사했던 일제의 횡포 속에서 초량왜관은 일인들의 집단거류지로 오해되며 왜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 근대기에 대한 스스로의 자신 없는 태도는 초량왜관을 더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초량왜관은 진정 우리의 것이었다. 조선왕조가 초량왜관의 핵심건물인 ‘동관 삼대청’(관수가, 재판가, 개시대청)과 ‘서관 삼대청’(참판가, 일특송옥, 부특송옥)을 직접 조영하였고, 이후 200여 년 동안 시행된 21회의 수리와 증축공사도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1607, 1617, 1624년 세 차례는 회답 겸 쇄환사)에 걸친 통신사의 파견도 초량왜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제 초량왜관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왜관 침탈사건이 있었던 1872년 9월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일제 침략과 연결된 오해와 왜곡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일제의 것으로 변질되기 전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학자들은 초량왜관을 “조선 유일의 치외법권지역(왜관 내부)으로 기능을 하였고, 연향대청(현 광일초등학교 자리)은 고명(高明)의 문화국이 미개인을 제어한다는 유원능통(柔遠能通)의 자주외교의 실효를 거두었던 조선왕조의 보루였다”고 평가한다. 11만여 평에 이르는 초량왜관은 규모 면에서도 당시 동아시아 외인 거류지 중 최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도시대 네덜란드 상인들의 거류지였던 나가사키 데지마(出島)가 약 4000 평이었다고 하니 초량왜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2009년과 2017년은 ‘초량왜관의 복원’을 위한 역사적인 해였다. 2009년 9월에 ‘부산초량왜관연구회’가 탄생했고, 2017년 12월에는 ‘초량왜관 교린(交隣)의 시선으로 허(許)하다’라는 제목의 부산박물관 학술연구총서가 발간되었다. 초량왜관을 위한 시민단체의 왕성한 활동 전개와 총서가 발간된 이 시점은 초량왜관의 자주적 회복을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도래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제 초량왜관이 조선왕조가 스스로 왜에 내어주었던 자조의 공간이자, 컨테이너 2000만 TEU를 돌파한 국제물류도시 부산의 뿌리라는 사실 확증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본다. 초량왜관 내 개시대청은 한 달에 6회 동래상인들이 일본과 인삼 비단 비단실 은 등을 상호 무역하던 곳이었고, 재판가는 조선과 일본 양국 간 외교현안의 해결을 위한 관리가 머물던 시설이었다. 즉, 초량왜관의 복원은 바로 국제물류도시 부산의 원형과 그 뿌리를 되찾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이 관수가를 오르는 계단과 골목길들, 그리고 비석 몇 개뿐이다. 전체는 물론, 부분 복원도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흔적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 중심을 잡기도 곤란한 실정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러운 점은 용미산과 용두산, 복병산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줄기 기슭에 자리 잡았던 초량왜관의 입지가 2018년 4월 현재의 부산 원도심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땅의 원리와 지역 역사를 완전히 갈아엎는 몰지각한 도시(재)개발의 행태가 부산 원도심에서는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부산 원도심의 기초 골격은 일제의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가 만들었던 역사적인 골격이었다’는 사실에 강한 희망과 신념이 생긴다.

이런 현실이라면, 초량왜관을 고고학적 발굴이 필요한 국보급의 문화재나 유적이 아닌 생활 속의 보편적인 역사문화, 즉 ‘도시유산(都市遺産)’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시각은 복원이란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여, 변화의 유연성을 갖춘 ‘회복’의 개념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며 특히 시민들에게 부산이 가진 ‘차별의 것’에 대한 가치 부여와 이에 대한 인정, 그리고 초량왜관의 회복을 위한 핵심 동인(動因)이 될 ‘근원적 의식 변화’와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시대적으로, 초량왜관의 회복이 더더욱 필요한 이유는 회복의 핵심대상들이 원도심 일원의 비활성 지역에 입지하기 때문이다. 백산거리와 대청로변에 집중되어 있는 초량왜관 유산들의 회복은 광복로와 환형(環形)의 결합을 통해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부산 원도심 부활의 촉발체로 작동함과 동시에, 부산 원도심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도시개발 패턴의 변화와 역사문화관광 차원에서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초량왜관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 대상이다. 항구도시 근대도시 물류도시 등과 관련한 부산의 ‘다름’을 가장 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부산이 진정한 세계적인 글로컬(glocal)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최고의 디딤돌이 바로 초량왜관이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초량왜관의 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뭔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는 부산 근대기에 대한 정신적 기반을 재정립할 수 있는 혁신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그래서 당장 그 회복이 완전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17~19세기의 부산에서 꿈꾸었던 선조들의 원대한 호혜와 교린의 정신 가치를 촉발시켜만 주어도 될 것이다. 그 꿈의 완성은 다음 세대로 미루고, 우리는 340년 동안 긴 잠에 빠져있는 초량왜관을 깨우기만 하면 될 것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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