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선거 대진표가 예상 밖으로 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인한 자유한국당의 위축과 친박의 몰락, 문재인 대통령으로의 정권교체에 힘입은 지방권력 교체 호기 등 정치적 변수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틈을 노려 애당초 여야 도전자가 넉넉할 줄 알았다. 당연히 집안 경선부터 치열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돌고 돌아 결국엔 중앙당에서 낙점해 다시 한번 ‘서병수 vs 오거돈’의 경합이 돼 버렸으니 일단은 맥이 빠진다. 본선도 본선이지만 출발부터 유의미한 선거전을 관전할 수 있는 기회를 거대 여야가 박탈한 것은 유권자에 대한 오만이다. 공히 당내 경선을 치렀던 4년 전보다 오히려 선거 민주주의가 후퇴한 셈이다.
두 사람의 리턴매치 상황을 접하면서 시민들 첫 반응은 어땠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공통된 말을 내뱉었을 법하다. ‘이렇게도 새 인물이 없나’. 친박 실세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부산시장 재선을 노리는 분이나, 열린우리당 2번과 무소속에 이어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달고 네 번째 부산시장에 도전하는 분이나 유권자들에게 비치는 이미지는 ‘과거’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두 번이라 했건만. 생물학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수긍 못 하는 바 아니지만, 글쎄. 4년 전 ‘62(서) vs 66(오)’하고 이번에 ‘66(서) vs 70(오)’이 주는 느낌은 영 딴판이다. 과연 기자만 그런 걸까. 지난 4년 사이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드론이 날았다. 속도와 창조성의 시대. 마음은 젊고 열정은 식지 않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얼마나 호소력 있게 유권자 마음을 파고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부산이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 토양이 후져서 인가, 민도가 낮아서 인가. 현대 사회에서 정치 인물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하기 쉽지 않다. 도전과 경쟁 없이는 배출되기 어렵다. 선거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은 유능한 지도자를 뽑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 정책과 정책이 치열하게 맞붙는 선거 과정에서 인물이 부침하고 키워지고 축적되는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게 선거다.
그렇다면 이참에 한번 생각해 보자. 현실적으로 부산시장 도전에 가장 근접해 있는 부류는 누굴까. 인지도 높은 지역 현역 국회의원들 아닌가. 여야 막론하고 그들 중에 이번에 부산시장 출마 제스처라도 취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나같이 지역구 울타리 안에 눌러앉아 차기 총선 때 선수(選數)만 늘리겠다는 계산으로 안주했을 뿐이다.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공천 영향력 행사에만 골몰했다. 야망도 기백도 없는 금배지들. 역동성 없는 선거판을 만든 책임이 적지 않다.
어쨌든 부산시장 선거 구도가 낡은 레코드판을 다시 돌리는 양상이 돼 버리자 기자 주변만 해도 적잖은 이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젊은 리더십, 젊은 부산’을 갈구해온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과연 두 후보의 리턴매치가 선거 흥행을 일으킬 수 있을지 자못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4차 산업시대 부산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하는 중차대한의 선거 아닌가.
시민들이 두 후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은 선거 관심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사실 표밭을 뒤흔들 만한 새로운 모습도 없지 않나. 그렇다고 특별히 감흥을 느낄 만한 요소도 보이지 않고. 인물·자질·능력 이런 것은 승부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양측에서 정책과 공약을 다듬고 있지만 2014년과 어떤 차별성이 있고,쟁점화 될 것인지도 투표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켜볼 일이다.
두 후보는 각자에 대한 여론의 평가에서부터 극과 극이다. 서병수 시장은 ‘지난 4년간 업적이 없다 - 조직을 개혁하고 안정적으로 시정을 이끌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시장 4수는 노욕(老慾)이다 -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 한다’로 엇갈린다. 이런 여론의 형성은 유권자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흠집내기’ 선거전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오 후보 측이 단수 공천을 받자마자 ‘서병수 시장 매니페스토 평가결과 왜곡’ 공세를 편 것은 전주곡이다. 어느 선거든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가 없을 순 없지만 격렬한 선거전이 예상되기에 조짐이 심상치 않다. 시청 전·현직 공무원들 사이에 편이 갈리고 있다는 얘기가 벌써 흘러나온다. 이들의 줄서기는 혼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게 불 보듯 뻔하다.
4년 전엔 서 시장(50.65%)이 오 전 장관(49.34%)에 1.31%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서 시장 측은 ‘박근혜 마케팅’에 기댄 측면이 컸고, 오 전 장관은 무소속 범야권 시민 단일후보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이번엔 이런 변수가 사라지고 상황도 바뀌었다. 표심은 과연 쉽게 정박지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표류할 것인가.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