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지리산 둘레길 295㎞를 걸었습니다. 동행이 있었지요. 보호관찰 청소년, 우리가 말하는 비행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어른들의 방치와 무관심으로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날로 심해지면서 보호관찰 청소년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각박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이미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시도하고 있는 청소년 교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걸으며 자아를 찾고 독립심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청소년 범죄 재범을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민간인이 만든 걷기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처음 시도하는 사업으로 필자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와 21일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천왕봉을 올랐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는 난생처음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것들을 지고 하루에 20여 ㎞씩을 걸어야 했습니다. 또 그날 목적지에 도착하면 텐트를 설치하고 밥을 해 먹어야 했으니까요.

걷기만도 벅찬데 짐까지 잔뜩 지고 걸어야 했고 한겨울에 따뜻한 방은커녕 차디찬 텐트 생활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본인이 지원했다고는 하나 불만이 장난이 아니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어른을 불신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어른과 함께 온종일 모든 일정을 함께해야 하는 일도 그 에게는 대단한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함께하는 나 또한 힘겹기는 솔직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모든 일, 가령 그 또래 아이들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나의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완전 차단되어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 또는 무반응, 몸에 손이라도 댈라치면 움츠림, 도대체 어떻게 아이에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고 나의 한계를 마주쳐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매일 계획한 대로 걸었고 목적한 대로 동그라미를 완성했습니다. 아이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를 완성한 사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웃음을 모르는 것처럼 굳어 있던 아이가 가끔 소리 내어 맘껏 웃기도 하고 사소한 농담도 주고받기도 하고 전혀 무관심이던 길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산을 파내서 산을 없애 버리고 싶다던 아이는 내키면 나보다 더 잘 걷기도 했습니다. 가끔 먹을 것을 나누는 여유까지 부리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녹아가고 있는 듯했고 좋고 멋진 풍광을 만나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게다가 그만큼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 방법을 쓰겠지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일지라도 걷기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이자, 소통이 무엇인지 알고 세상과 타인 특히 어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할 만합니다.

출발을 잘못해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보통 사회에서는 처벌 통제 등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사실이라 아이들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대부분 아이는 자기들만의 세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다시 그 세계로 빠져들기가 쉽고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힘이 필수이기 때문에 좀 더 강하고 세게, 강인해져야만 하고 그것이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방법이 많겠지만 이번에는 자연과 접하고 실제로 자신의 몸을 써서 걷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사물과 대상을 접합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자기 발로 직접 걷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피할 수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이라고 잘잘못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므로 자신의 잘못된 일들을 돌아볼 수밖에 없겠고 그 시간이 모이면서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오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생각하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나 또한 많이 부족했지만 내 나름의 치유와 나눔의 시간이 좋았습니다. 또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과 함께 길을 나설 것입니다.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