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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야! 부산시가 돈이 없는 갑다!” /김승남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3-13 18:59:5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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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시청에서 열린 부산시민공원 조성 보고회에 참석해 계획안을 접하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경마장 트랙 흔적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미군부대까지 부산 근대 100년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건축과 수목들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조경가의 계획이라는 이유로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 기가 막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도 외치자는 심정으로 친구들과 하야리아공원포럼을 만들어 몇 년간 노력한 끝에 지금 남아 있는 도시 흔적과 건축물 일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참여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해서 공원 개장 첫날 어머님을 모시고 제일 먼저 달려갔다. 아들의 손을 잡고 조성된 공원을 둘러보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야! 부산시가 돈이 없는 갑다. 새 건물은 못 짓고 옛날 건물에 뺑끼 칠하고 말았네!” 하늘이 다시 노래졌다.

누가 부산의 가장 큰 자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도시에 남겨진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부산을 해안도시로만 알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부산은 오랜 시간 수많은 하천이 흙을 날라 천혜의 해안 풍경과 문화를 축적한 삼각주의 땅이다. 특히 두무포와 초량 왜관뿐만 아니라, 개항과 해방에서 전쟁과 산업시대까지 파란만장한 근대사가 도시의 시간이 되어 남아 있다. 이러한 자연과 문화의 유산들은 모질고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낸 대가로 주어진 주옥같은 선물이다. 이 남겨진 시간이 도시의 기억과 이야기가 되고 그 위에 새로움이 더하여져 삼각주의 특성인 개방, 연계, 소통, 다양, 공존의 토양을 마련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부산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귀하게 남겨진 도시의 시간성을 훼손한 것이다. 계속 쌓이는 삼각주를 콘크리트로 매립하였고, 하천은 복개도로로, 강엔 둑을 만들어 바다와 갈라놓았다. 귀한 자연은 그린벨트까지 아파트와 공단, 관광단지로 바뀌었고, 옛 부산세관, 부산시청, 남선창고 등 근대문화의 유산들은 사라졌다. 작년엔 뛰어난 건축구조에 추억이 서린 구덕체육관이 소리 소문도 없이 철거되었고, 부산 최초 공립도서관인 부전도서관과 동래읍성의 흔적을 지닌 동래구청은 단두대에 올려져 있다.

그나마 남겨진 유산들을 대하는 방식도 다를 바가 없다. 1918년 한성은행으로 지어져 근대문화유산이 된 중앙동 청자빌딩은 다행히 부산시가 매입하여 고쳐 쓰기로 했지만, 정작 리노베이션 과정은 우려를 자아냈다. 값싼 페인트칠, 번뜩이는 홈통과 창틀 마감, 생뚱맞은 노출콘크리트…. 가치가 재생되기는커녕 훼손되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전문가들이 참여했는데 어찌 된 건지 이유를 물어보니 또 시간과 비용 탓이다. 근대문화유산을 다루는 자세가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어떠하겠는가. 사업연도와 비용을 못 박고 진행하는 수많은 ‘도시재생사업’조차 마을의 고유한 시간을 없애고 값싼 유사품을 복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도시에 남겨진 시간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대부분 공공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다. 올해 초 해운대 해변에 설치된 데니스 오펜하임의 유작을 폐기한 사건이 있었다. 작가와 작품의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공공자산을 고철상에 팔아버린 당사자가 철모르는 아이가 아닌 공공기관이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무지를 넘어 범죄 같았다. 문제는 이 일이 일회적인 실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공공이 열심을 내어 해온 관행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부족한 재원 속에 도시발전을 위한 열의는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것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귀한 유산들을 버리고 훼손했으며 지금도 혈안이 되어 있는지. 뉴욕타임스에서 올해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부산을 꼽으며 이유로 들었던 전포동 카페거리나 부산역 앞 백제병원은 공공이 했다면 결코 지금의 ‘브라운 핸즈’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공공은 아직도 도시에 남겨진 시간의 소중함과 그것을 보존하고 재생하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는 공공의 이름으로 공유재산을 사유화로 팔아먹고, 문화유산을 없애고 가볍게 다루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그것은 도시 발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도시의 가치를 파괴하는 일이고 부산시민을 정말 가난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 유산으로 남겨진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스스로 지켜야 할 때가 되었다.

일신설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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