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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열린 도시와 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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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2-08 19:02:3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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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敵)들’은 철학자 칼 포퍼의 저서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다. 포퍼에게 열린 사회란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이다. 이를 확장 해석하면 열린 사회란 다양한 개성이 보장된 사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에도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가 있다. 자연,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도시를 개성 있게 구성하고 있으면 열린 도시이다. 부산은 열린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남해에 걸쳐 있으며 한반도의 척추를 타고 내려와 뒷발 들고 서 있는 호랑이 산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다. 자연적 다양성의 혜택을 받고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발자취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그것이 고난의 역사이든 영광의 역사이든 부산은 그 흔적들을 자신의 다양성으로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화재청이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잠정목록에 선정한 일은 새해의 반가운 뉴스 가운데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도 거창하지는 않지만 ‘발견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는 부산의 역사적,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여행자에게 시장은 그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이다. 더구나 시장을 돌아보다 예기치 않은 역사·문화적 흔적을 발견하는 건 더없는 기쁨이다.

시장을 관광할 때에는 브라우징(browsing) 기법이 제격이다. 오늘날 ‘브라우즈’ 하면 인터넷 정보 검색을 떠올리지만, 그 원래 뜻은 식물의 싹 잎 잔가지를 총칭하는 데서 유래했고, 그런 것들을 여기저기 다니며 뜯어먹는 초식동물의 행동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 원래 뜻으로 돌아가서 시장의 방문객은 오감을 총동원해서 새싹과 풀잎을 뜯는 동물처럼 시장의 멋과 맛을 음미하고 상인의 흥과 끼에 맞장구치며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잊고 어딘가에 들어서게 되어 전혀 기대치 않은 대상과 맞닥뜨리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호떡을 오물거리며 동래시장을 브라우징하다가 돌담을 만나고 그를 따라 걷다 보면 ‘동래부 동헌(東軒)’ 앞에 우뚝 서게 된다. 채소 좌판들을 보며 어슬렁거리다 고개를 돌린 순간 아담한 기와로 장식된 문을 보고 따라 들어가 예기치 않게 송공단(宋公壇)을 참배하게 된다. 송공단은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해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분들을 모신 곳이다. 이런 경험들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리만치 소중한 것이다.

부산은 사회적 다양성이라는 점에서도 열린 도시이다. 외지인들에 친절하고 이방인에 관대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런데 부산이 여러 차원에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지 의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건축 관계 일을 하는 친구가 부산을 방문하고 광안대교를 건너본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광안대교는 2층 복합 구조로 되어 있다. 상층은 해운대 우동에서 수영구 남천동 방향으로 갈 때 사용하고 하층은 그 반대이다. 친구는 의외의 지적을 했다. 해외에도 이런 식의 다리가 있지만, 다리 상층 도로는 도시에 들어올 때, 하층은 나갈 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방문하는 도시를 관망하며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친구는 해운대지역을 부산의 중심이거나 부산 그 자체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내게 앞서 말한 피란 수도 부산지역과 동래지역 등 다양한 곳을 다시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에는 하나의 중심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은 ‘다중심 도시’라는 형용모순 어법으로 표현할 만한 다양성을 지닌 도시이다. 친구는 광안대교가 부산의 한 중심에서 다른 중심 사이를 왕복하는 다리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열린 도시에 열린 방문객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닫힌 방문객’들도 찾아온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면 열린 도시를 만끽할 수 없다. 포퍼 방식으로 ‘열린 도시와 그 적들’이라고까지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열린 도시의 친구들은 아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유명하다. 괴테가 이탈리아, 특히 로마를 그토록 여행하고 싶어 했고 결국 그 꿈을 이뤘던 것은 로마가 서구문명의 원류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로마가 다양성 가득한 열린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열린 마음으로 로마를 방문했다.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 도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여행하는 것이다. 괴테는 그러기 위해서 자료를 챙기고 공부했다. 괴테는 고백한다. “로마로 가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고 순간순간마다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잠시도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이곳에 도착한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생 지속될 듯한 안정을 찾은 것 같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로마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속속들이 알고 있던 것을 실제로 눈앞에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바로 거기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준비된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삶을 만난다.

괴테 같은 여행자는 열린 도시의 친구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런 열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닫힌 방문객을 열린 마음의 여행자로 만들어야 한다. ‘널리 알리는 일’ 곧 홍보가 필요한 것이다. 부산시의 희망대로 2025년에 피란 수도 부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그 홍보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시적으로 효율성 있는 홍보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이것이 부산의 관계 기관에서 할 일이다.

   
관광객이 빛을 보게 하려면 빛이 있는 곳을 찾게 하는 성능 좋은 ‘위치추적장치’를 달아줘야 한다. 그 장치가 관광홍보의 콘텐츠다. 그러면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을 갖고 자연적,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개성 넘치는 부산의 다양성을 만끽하는 열린 도시의 친구들을 언제나 풍부하게 맞아들이게 될 것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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