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립다면 자작나무 숲으로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눈밭을 구른 듯 새하얀 줄기에 굽은 데 없이 하늘로 쭉쭉 뻗은 늘씬한 자태로 언제든 당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숲의 여왕’이어서다. 자작나무의 이런 넉넉하고 한결 같은 미덕은 우리 역사와 풍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일부는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한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경북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리기도 했다. 기름기가 많아 장기간 썩지 않는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자작나무를 한자로 ‘화(樺)’라고 쓰는 건 촛불이 귀했던 시절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화촉(華燭·결혼식용 초) 대용으로 썼기 때문이다.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자작나무의 이름 유래도 정겹다.
자작나무는 한반도에선 기온이 낮은 중·북부 지방에 주로 서식한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시인 백석은 시 ‘자작나무’에서 고향을 이렇게 추억했다. 그의 고향에는 자작나무가 지천이었던 모양이다. 백두산의 자작나무 숲 경치는 단연 으뜸이라고 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시베리아 설원의 자작나무 숲을 연상케 한다는 얘기도 있다. ‘흰머리’를 뜻하는 백두산의 이름은 어쩌면 자작나무 숲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르겠다.
남한의 자작나무 최대 서식지는 강원도다.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과 인제, 홍천, 횡성 등 도내 곳곳에서 겨울이면 순백의 향연이 펼쳐진다. 1만8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룬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이 가장 유명하다. 눈밭 위에 20~30m씩 높이 자라 하늘을 가릴 듯 우거진 자작나무 숲은 영락없는 백의민족의 후예다. 자작자작 정담을 나누는 듯한 풍경은 평생 남의 부탁 한 번 거절하지 않은 선한 백성의 모습을 닮았다. 자작나무 숲은 평화올림픽을 표방하는 평창올림픽의 상징인 셈이다.
평창올림픽에선 70여 년 분단도, 그 세월이 아로새긴 상처도 모두 내려놓고 자작나무 숲처럼 하얀 통일세상을 이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라는 외침만 남길 바란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