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 부산지역 후보군이 신문 지상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시장, 구청장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낯익은 이도 있고 낯선 이도 적잖게 보인다. 선거는 정치 신진들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는 만큼 후보군이 풍성하고 분야별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건 인물 배출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다. 철학과 이상도 없이 때만 되면 이름이나 걸쳐놓고 보자는 속물주의는 빼고 말이다.
기자도 정치부장을 하면서 6~8년 전 국회의원과 지방, 두 번의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 만났던 후보자들에게 빠지지 않고 던진 질문이 있다. ‘당신은 평소 부산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해 왔는가. 그 결과물은 무엇인가’. 이에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애초부터 글러 먹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인 자질도 자질이지만 적어도 지도자가 되려면 부산에 대한 성찰과 애착, 헌신의 자세부터가 남달라야 하는 게 기본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정파를 떠나 꽤 괜찮은 인물들이 좌절하거나, 그들의 정치적 성장을 가로막은 게 역대 부산의 선거판이었다. 1990년대 초부터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당명만 바뀌었을 뿐 보수정당이 부산을 독점해 온 탓이다. ‘보수의 안방’에선 선거 때마다 밀실 공천, 사천(私薦), 공천 피바람 같은 용어만 난무하면서 그들만의 ‘3류 정치극’이 벌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물이 나오지 못하고 클 수 없는 정치토양. 그나마 직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5석을 얻어 판을 흔들어 놓았지만, 시장과 기초단체장은 여전히 보수당 독무대로 남아 있다. 무소속 기초단체장이 일부 있었으나 그들 또한 범보수세력이었다.
한쪽만 바라본 부산의 민심 풍향계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바뀔 것인가.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는 요즘이다. 보수정당의 선거 싹쓸이에 익숙했던 계층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젊은 층의 선거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당색보다는 인물 대결로 지역 일꾼을 뽑는 원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이유다.
역대 부산의 선거를 통틀어 짧은 평을 해보라면 독자들은 어떠신가.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매혹의 결핍’이라고. 인물도 비전도 민심의 중추신경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 감흥은 없었고 역동성 또한 떨어졌다. 유권자는 ‘정치 소비자’다. 그들의 감동 구매력을 높일 인물이 지금 거론되는 시장, 구청장 후보군 안에는 과연 있는가.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기자회견 때 있었던 실화다. 일본 언론인들이 그에게 존경하는 일본 정치가가 있느냐고 물었다. 의외의 답이 나왔다.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뒤를 이어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의 리더십’으로 에도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도를 꼽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게다. 케네디가 지목한 인물은 우에스기 요잔. 회견장이 술렁했다. 아무도 그를 몰랐기 때문이다.
1700년대 후반 에도시대 일본은 260개 번으로 나뉘어 있었다. 번은 지금 우리로 치면 도와 군 사이쯤 된다. 각각의 번은 중앙의 지배와 간섭을 받으면서도 번주가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일종의 지방자치국가 체제였다. 따라서 번주가 잘못하면 번 자체가 쇠락의 길을 걸었는데 요네자와라는 번이 그러했다. 재정이 파탄 나고 민생은 궁핍했다. 백성들은 만성적인 무력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케네디가 말한 우에스기 요잔이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죽은 도시나 다름없던 요네자와번에 젊은 우에스기 요잔이 새 번주로 오게 됐다. 그 또한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숨을 쉬며 가마를 타고 부임을 하는데 곁에 있는 불 꺼진 화로가 꼭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보는 듯했다. 그러던 찰라 무심코 부젓가락으로 화로 속을 뒤적이다가 저 밑바닥에서 살아 있는 불씨 하나를 발견했다. 순간 청년 번주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짐했다. ‘아! 나도 망해가는 번을 살리는 하나의 불씨가 되리라’하고. 젊은 번주의 모습에 신하들도 힘을 냈고, 그 소식이 백성들 마음 하나하나에 희망과 용기의 불씨로 옮겨 붙었다. 불씨는 급기야 용광로 불꽃이 돼 번을 구렁텅이로 빠트렸던 타성, 관습, 형식, 권위를 녹여 없앴다. 개혁에 박차를 가해 요네자와를 가장 부유한 번으로 거듭나게 했음은 물론이다. 후대에 우에스기 요잔은 일본에서 이상적인 리더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문화와 제도가 다른 200년도 훨씬 더 된 일본의 얘기에서 무슨 큰 교훈을 얻자고 하는 게 아니다. 선거철이 되니 먼저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백성들 정신과 마음을 하나로 묶은 요네자와 젊은 번주의 리더십이 부러워 되새겨본 것이다. 시대 흐름에 대한 총체적 독해력과 창조성이 지도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부산에선 과연 누가 ‘불씨’가 될 것인가.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