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귀한 마음이 담긴 선물만큼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산모가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국가로부터 ‘베이비박스’라는 선물을 받는다. 베이비박스 안에는 태어날 아이와 그 부모를 위해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육아용품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성별 구별이 없는 아기 옷, 방한복, 양말, 수건, 기저귀, 체온계, 산모용 물품까지 40여 종이 들어 있다. 상자는 튼튼한 마분지로 되어 있고 내부에는 부드러운 솜과 매트리스, 이불까지 있어 아기 침대로도 사용되는데 핀란드 성인들에게는 추억의 요람이기도 하다. 출산수당으로 25만 원 내외의 현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핀란드인은 당연히 45만 원 상당하는 베이비박스를 선택한다.

핀란드는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교육과 아이 돌봄 정책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공적 지출을 하는 나라이다. 그 결과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아이의 엄마가 느끼는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되었다. 핀란드의 베이비박스에 담긴 것은 단순한 출산용품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를 따뜻하게 맞는 국가와 사회의 환영, 아이의 인권과 사회권에 대한 보장, 그리고 모든 아이가 평등하게 대우받고 자라나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 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베이비박스는 환영이 아니라 버림의 상징이 되어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아이를 자력으로 키울 수 없는 부모가 민간기관들에 비밀리에 맡기는 차가운 박스로 우리 사회의 아동에 대한 인권과 사회보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가 아동수당을 올해부터 시행하려 하고 있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이 과거 20년 동안 이어져 왔던 것이라면 아동수당제는 처음 시작되는 복지제도이다. 1940년대 영국의 비버리지보고서에서 시작되어 복지국가의 대표적 슬로건이 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체제 중 ‘요람’의 핵심 정책과제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실시되는 것이다. 세계 90여 개국이 아동수당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아동수당제에 대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다. 작년 12월 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야당의 반발로 가구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 것 때문이다. 원래는 올 7월부터 0~5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월 10만 원의 정액 급여가 지급되는 보편적 수당으로 계획되었으나 야당의 반대로 선별적 수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사회(출산율 1.3 이하)에 진입한 지 이미 10년 이상 경과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수많은 대책을 쏟아내었고 2020년까지의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만도 100조 원 이상의 재정지출을 계획하고 있으나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수당제는 저출산 문제를 해소할 유일한 정책이 아니지만 지속되면 좋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관건은 보편수당으로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다. 아동수당을 보편수당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예산 절감을 위해 소득 하위 90%를 대상으로 하는 선별수당이 결코 재정 절감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후소득이 단순하고 규모도 크지 않는 노인에 비해 경제활동을 하는 아동의 부모세대인 경우 다양한 소득원을 갖고 있어 상위 10%를 가려내기 위해 전수 조사하는 과정에 막대한 행·재정적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또 소득 구분 없이 아동수당을 제공하는 것은 OECD 35개 국가 다수가 실시할 만큼 이미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국제사회 현실도 고려돼야 한다. 아동수당이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게 될 때 납세자의 세금이 국민의 사회보장을 위해 잘 사용되고 있음을 체감하게 하고 보육 책임을 사회 전체가 함께 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할 것이다.

세금의 부과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편적 복지 수혜는 평등한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보장의 튼실함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사회보장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개인은 안심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힘든 여정을 상쾌하게 출발할 것이며 안정된 부모와 협력적인 사회가 기른 아이들은 우리 사회를 건강한 공동체로 만들어갈 새로운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어둠을 틈타 아이가 버려지는 베이비박스가 사라지고 환영과 연대의식으로 가득한 따뜻한 베이비박스가 많은 가정에 전달되길 바란다.

신라대 기획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