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나는 ‘제설작업 확실히 해드립니다’라는 선거 캠페인이 마음에 쏙 들어 그분의 당선에 일조했는데 엊그제 폭설이 내렸지만 우리 동네 눈은 치워지지 않았다. 747 공약(7%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액면대로 믿지는 않았어도 청계천 복구를 보고 은근히 기대했지만 국민 행복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창조경제를 하면 청년 일자리가 늘고 제2의 벤처 붐이 일어날 거라 응원했지만 취업시장은 더욱 나빠졌다.
보수와 진보로 정권은 바뀌어도 어찌 된 일인지 부자는 계속 부자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부의 대물림은 보수와 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점점 고착화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인 우리나라 부의 유동성은 생산수단을 국가가 쥐고 있는 이웃 공산주의 국가 중국보다도 못하다. 우리나라는 부자 열 명 중 일곱 명이 세습이고, 중국은 열 명 중 한 명이 세습이다.
현재 경제시스템 안에서 부를 새롭게 창출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우리나라는 한탕주의에 점점 몰입하고 있다. 로또 판매액은 매년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운다. 고위험 고수익인 로또는 작년 하루 평균 104억 원어치씩 팔렸다. 최근에는 일확천금의 광풍이 암호화폐 시장에 몰렸다. 암호화폐 하루 거래대금은 1200여 개 주식이 상장된 코스닥 시장 거래대금을 웃돌기도 했다. 이들은 수익 기회는 적고 위험은 크다. 불나방처럼 몰려들지만 번 사람보다는 손해 보는 사람이 많은 시장이다. 로또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에 속한다. 저소득층은 복권을 살 여유마저 사라지고 있다.
올해 경제정책의 화두는 최저임금제다. 2018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으로 작년보다 16.4%가 인상됐다. 기업이 최저임금 상승률 16.4%에 견줄 수 있는 자본생산성을 맞추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까닭은 그만큼 절실함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네팔 트레킹을 다녀와 “정치의 목적은 국민 행복이다”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 말이다. 2013년 12월 연말을 달군 고려대학교 주현우 씨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아직도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희미해진 요즈음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은 꿈을 잃어 가는 저소득층에게 꿈을 다시 돌려주는 최소한의 수단인 셈이다.
모든 경제적 선택은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그리고 꿈에 대한 실현 가능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경제적 유인은 커진다. 고소득층은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진다 해도 꿈을 유지하는 데 별반 지장을 받지 않지만 중간계층 이하에서는 성장 기회가 줄어들어 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양극화는 자산시장 내에서도 보인다.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 내에서까지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강남만의 아파트 가격 상승,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값만 올랐다는 ‘삼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셀트리온만 올랐다는 ‘셀스닥’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모든 경제적 선택은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선택은 투자이고, 꿈의 실현은 성과이다. 투자 대비 성과의 크기를 생산성이라고 하는데 생산성이 마이너스가 나오는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투자할 용기를 잃는다. 이른바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구조적이라고 말할 때는 중간계층 이하에서 투자할 용기를 점점 잃어간다는 의미이다.
정치는 대개 중간계층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 찬사를 받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양극단을 조율해 중간계층이 두꺼워지는 정책을 펼친다.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정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책의 선택은 씨앗일 뿐이다. 씨가 자라나려면 거름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주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은 선택 그 이후에 공들여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는 씨앗일 뿐 열매는 아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중산층까지 따스한 온기를 주려면 물을 주고 거름을 계속 주어야 한다. 눈만 오면 집에 오르는 고갯길이 여전히 힘겹기만 하다. 우리 중산층의 삶이다.
경성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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