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일자리 창출도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 우리 경제를 지탱해 왔던 중후장대한 제조업 기반의 경제구조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AI(인공지능),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MR(혼합현실),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을 통한 혁신성장이 해법일까.
혁신산업은 아이디어나 기술 개발만으로 산업화가 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번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기술 개발로 연결되기까지 부딪히는 ‘악마의 강’, 기술 개발이 되더라도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난관을 겪게 되는 ‘죽음의 계곡’, 그리고 신제품 양산에 성공하더라도 온갖 경쟁을 뚫고 산업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다윈의 바다’가 그것이다. 강, 계곡, 바다를 넘어 산업화에 성공하려면 사업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다양한 컨설팅과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컨설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필요한 자금은 투자자가 쉽게 내놓지 않는다. 이들 기업의 사업 성공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다고 해서 이를 모험자본이라 일컫는다.
한편 투자자(주로 벤처캐피털, PEF)가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창업-성장-사업화가 일회성으로 끝나고 만다. 다시 창업-성장-사업화로의 선순환이 일어나게 하려면 투자자금 ‘회수’(Exit)를 통해 재투자(창업-성장-사업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4차 산업의 다방면에서 이런 선순환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수 있는 혁신창업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비로소 혁신산업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창업-성장-사업화까지의 컨설팅과 자금조달은 엔젤, 엑셀러레이터, VC, PEF 등이 도맡아 하고 투자자금의 ‘회수’(또는 회수를 통한 산업화)는 주로 M&A나 자본시장 IPO(기업공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험자본 생태계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회수시장이라고 한다. 강과 계곡을 무사히 건너도 ‘다윈의 바다’(회수시장)를 넘지 못해 중도탈락하고 만다. 선진국에서는 M&A가 회수 방식의 80%를 차지하지만 우리는 3%가 채 안된다. 그래서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을 IPO로 받아들여야 하는 자본시장이 ‘회수시장’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IPO는 회수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우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혁신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 채널이다. 그 중심에 코스닥시장이 있다.
정부와 거래소는 회수시장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나는 테슬라 상장조건처럼 IPO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IPO를 지속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시장 유동성을 확충하는 것이다. 여기서 후자, 즉 풍부한 시장 유동성이 시장을 지탱하는 근간이 된다. 유동성이 부족하면 가격 변동성이 커져 IPO 기업이 제 가치를 받아낼 수 없고 각종 경제적 충격에 시장이 쉽게 망가지게 된다. 게다가 작전 세력에 의해 시장 신뢰도 잃게 된다.
풍부한 유동성을 유인할 묘안은 없을까. 무엇보다 상장된 기업들의 펀드멘털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사이드에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시장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코스닥시장을 기관 중심의 안정적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첫째, 기관투자자가 보유 포지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파생상품시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코스닥 150 옵션 등 코스닥시장의 위험관리를 지원할 다양한 선물·옵션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코스닥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에게도 헤지는 필수다. 그런 점에서 개인에 대한 파생상품시장 진입규제는 완화되어야 한다. 둘째, 코스닥시장이 과열을 보일 경우 이를 냉각시킬 차익거래시장이 필요하다. 차익거래는 주식시장과 파생상품시장 간 가격 괴리 시 가격이 비싼 시장에서 매도하고 싼 시장에서 매수하는 거래 전략이다. 이를 통해 양 시장 간 균형을 되찾고 양 시장에 유동성도 풍부하게 공급하게 된다. 연·기금의 차익 거래에 대한 면세조치는 그래서 중요하다. 성숙한 경제에서 성장을 이끄는 근본 원동력은 혁신이고 혁신은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에서 가격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될 때 구현된다.
한국거래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