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사진작가 김수남의 바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1-11 19:14:49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제주 산지천은 한라산 관음사 남쪽에서 발원해서 제주시 건입동 일대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이 건입동 일대는 제주의 구도심 지역이다. 예부터 도민들은 산지천의 물을 끌어다 사용했다. 최근 이 산지천 인근에 ‘산지천 갤러리’가 개관했다. 목욕탕 겸 여관이었던 금성장과 여관이었던 녹수장을 리모델링해서 갤러리 공간으로 바꿨다. 대중목욕탕의 높다란 굴뚝을 그대로 남겨놓았고, 갤러리의 외관도 옛 건물의 자취를 되도록 살렸다. 앞으로 이 공간은 제주 작가와 제주 출신 사진작가들의 중요한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근에 이 산지천 갤러리엘 다녀왔다. 갤러리에서는 개관 기념 첫 특별전으로 제주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고(故) 김수남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김수남, 아시아의 바다를 담다’를 테마로 한 전시였다. 제주는 물론 일본과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등 바다를 접해 살고 있는 나라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신앙, 축제를 카메라에 담은 작품들이었다. 김수남 작가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들과 유품들을 제주도에 기증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이번 전시에는 기증된 사진들 외에도 작가가 사용했던 카메라와 취재메모, 원고 등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김수남은 1947년 제주 한림에서 태어났다. 언론사 사진부 기자로 일하던 중 1980년부터 한국의 굿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85년에 회사를 사직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전국의 굿판을 사진으로 옮겼다. 1988년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해서 2006년 별세할 때까지 아시아를 떠돌아다니며 아시아의 민속 문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한 해의 절반을 아시아 지역에 나가 살 정도로 국경을 넘나들었다. 김수남은 한 산문에서 “아시아는 한 사람의 사진가가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넓고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라고 쓰기도 했다.

1980년대 제주 우도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비롯해 그물을 걷는 제주 어부, 전통 물옷을 입고 테왁을 든 제주 해녀 등을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또 일본 오키나와의 바다, 타이완 소수민족 야미족이 사는 어촌, 베트남 메콩강의 수상시장, 배가 없어서 바다 한가운데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 종일 매달려 장대 낚시를 하는 스리랑카의 가난한 어부들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험한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일상 풍경이었다. 강한 해풍과 거친 파도에 맞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굿이 벌어진 판을 찍은 사진이었다. 김수남은 글 ‘살아있는 신화 아시아’에서 “굿이란 무엇인가.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러한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것이다.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변해버린 하나의 신앙체계, 이것을 찍으며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라고 자문자답해서 썼다.

대부분의 사진은 바다에서 조업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판의 사진이거나 바다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건져 저승으로 천도하는 굿판의 사진이었다. 역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록한 작품들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이라는 용어를 대신해 ‘심방’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특히 바람의 여신인 영등을 위해 굿판을 벌이는 제주도 영등굿 사진은 신과 인간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남다른 느낌이 들게 했다. 음력 이월 초하루에 내려왔다가 보름에 하늘로 올라가는 영등할망을 잘 모셔야 만선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또 해녀들이 나중에 바닷속에서 캘 소라와 전복, 성게 등이 잘 자란다고 믿어서 이 영등굿은 해녀들이 주관했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해신제, 스리랑카 베다족의 굿, 미얀마 만달레이의 굿을 찍은 사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신이 들린 무당들은 불을 삼키고, 탈을 쓰고 굿을 함으로써 부정한 것을 몰아내고 복을 빌었다.

김수남이 굿판 사진을 찍으면서 남긴 취재메모들을 전시회에서 보았는데 그는 육필로 이렇게 적었다. “몹시 추웠다. 음력 이월 아직도 매서운 갯바람이 불었다. 멍석을 깔고 보낸 바닷가 천막에서의 2박3일. 고산에서 무혼굿을 보며 나는 많이 울었다. 어딘들 그렇지만 젊은 아들을 보낸 노모, 남편을 잃은 젊은 미망인들의 슬픔, 비명에 떠난 사람도 그렇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 생각 때문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큰 심방(무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수남은 17만 컷에 달하는 사진을 남겼다. 한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그는 “처음으로 우리에게 아시아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이번 특별전은 김수남 작품들의 극히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김수남의 검푸른 바다를 얼핏 본 것 같았다. 김수남은 격랑이 몰아치는 삶, 그리고 그 높은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애환, 그리고 꿋꿋한 삶의 의지를 함께 검푸른 바다의 공간에 담았던 것이다. 물론 그는 제주의 바다에서는 뗏목배 테우에 늙은 어부와 함께 타고 있었고, 베트남 메콩강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 배에 소년과 함께 타고 있었다.

김수남은 그들의 아픔과 눈물과 함께했다. 그래서 김수남의 사진들은 한결같이 뜨거웠다. 그의 사진들은 대중 곁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담아내고,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는 예술 작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김종삼 시인이 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에서 썼듯이 아닌 게 아니라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의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일 것이다.

시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부산교통공사부산교통공사

 많이 본 뉴스RSS

  1. 1‘포수 FA’ 관심 없던 롯데, 이번엔 쇼핑목록에 담나
  2. 2부산시민공원 주변 재개발 아파트, 층수 낮추고 동수 10개 늘린다
  3. 3부산·경상대 교수들도 미성년 자녀 논문 공저자 끼워넣기
  4. 4 반려동물과 식용동물 이분법?…생명에 어찌 다름이 있을까
  5. 5부산 국회의원 해부 <하> 선거 공약 검증
  6. 6문재인 대통령 “건설·SOC 투자 확대”
  7. 7송도 해안도로 달리는 시내버스 결국 무산
  8. 8부산 극단적 선택 1위 오명 벗었지만…
  9. 9“북항 재개발 수익으로 미군 55보급창 공원화하자”
  10. 10시계바늘 밑 터치스크린…아날로그 융합 스마트워치
  1. 1‘DJ 아들’ 김홍걸 총선 출마 시사… 목포서 ‘DJ 비서실장’ 박지원과 맞붙나
  2. 2정점식 “정동병원서는 정경심 뇌종양 진단서 발급 안 했다고…”
  3. 3법사위 국감, ‘검사 블랙리스트’ 논란 한동훈 반부패부장도 출석
  4. 4장제원, 국정감사서 “좌파 광란의 선동 정점은 대통령” 文 저격
  5. 5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 45.5%… 조국 사퇴 이후 회복세
  6. 6금태섭, 윤석열에 ‘국회 출석’ 묻고, 한겨레 고소 지적
  7. 7군, 드론탐지레이더 부울경에 시범배치
  8. 8"언론재단 정부광고 대행 수수료 인하 혹은 폐지해야"
  9. 9최인호·김세연·윤준호, 도시재생 정부사업 선정돼
  10. 10힘 받은 황교안, “이낙연 노영민 이해찬 나가라”
  1. 1 산업의 힘, 기계부품
  2. 2평균층수 제한해 스카이라인 보장…경관·공공성 높였다
  3. 31965년 옷 다시 입은 ‘대선소주’
  4. 4시민공원 주변 재개발 아파트, 층수 낮추고 동수 10개 늘린다
  5. 5부산 고액·상습체납자 404명…1인당 평균 7억
  6. 6주가지수- 2019년 10월 17일
  7. 7드론 택배 2025년 상용화…정부 “선제적 규제 혁파”
  8. 8“연구개발 집중 투자는 창업 때부터 가장 중시, 국내외 망라 협업 강화”
  9. 9“부산항 부두 직통관 물동량 검사 비율 1.7% 수준 그쳐”
  10. 10부산 제조업 하반기 고용 절벽…업체 73%가 “안 뽑겠다”
  1. 1“설리 동향보고서 유출, 한 직원이 SNS로 퍼트려…” 처벌은?
  2. 2제28회 경남도 의용소방대 소방기술경연대회 개최
  3. 3통근 버스 졸음운전에 7명 다쳐…경찰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 중”
  4. 4로스쿨 10년 부산 변호사 2.4배 증가…급여 줄고 경쟁 심화
  5. 5'대도' 조세형 "아들에게 얼굴 들 수 없는 아비"…선처 호소
  6. 6'국정농단·경영비리' 롯데 신동빈 징역 2년6개월 집유 확정
  7. 7“뇌종양·뇌경색 진단서 발급한 적 없어” 정동병원, 정경심 추석 입원 병원
  8. 8조국 복직에 서울대 안팎서 '분노의 표창장' 등 패러디
  9. 9장용진 기자 “기자라면 누구나 상대 호감 사려…그런 취지로 한 말”
  10. 10개정 전 지방공무원 여비 지급 규정 두고 해석 분분
  1. 1손흥민 북한선수와 ‘유니폼 교환’ 질문에 “굳이…”
  2. 2‘포수 FA’ 관심 없던 롯데, 이번 쇼핑목록엔 담나
  3. 3류현진, 현역 투표 최고투수 후보 3인에 올라
  4. 4전쟁 같았던 평양 원정…손흥민 “안 다친 게 다행”
  5. 5베이브 루스 500홈런 방망이, 경매 최고가 경신할까
  6. 6
  7. 7
  8. 8
  9. 9
  10. 10
부산 국회의원 해부
선거 공약 검증
부산 국회의원 해부
의정활동 충실도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감동스러운 도시건축을 만나고 싶다
진정한 탈일본을 결단할 때
기고 [전체보기]
장애인복지관이 나아갈 방향 /이성심
부산시 국립특수학교 부지 허가를 /김석주
기자수첩 [전체보기]
문화 축제로 진화하는 BIFF /김민정
시커먼 흙, 시커먼 기억 /배지열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솔로몬 심판’과 오늘 우리의 송사들
귀농 귀어 귀촌에도 균형발전 없는 나라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힐링의 악기 ‘깡깡이’ 해금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음악문화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가난,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하송이
‘억울함’에 귀 기울이는 자세 /이병욱
도청도설 [전체보기]
레이와의 역설
공적 된 멧돼지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과 다섯 수레의 책
조선시대 ‘북캉스’ 풍경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전남 영암 독천리의 ‘갈낙탕’
짜장면과 라면 그리고 염치
사설 [전체보기]
예산 부족 두리발·자비콜 멈춰서게 해선 안 된다
갈수록 암울해지는 경제 전망, 정부 총력 대응 나서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소산소사’의 사회, 고용연장이 해법
중앙정부와 지자체 복지 역할 재정립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절망 속에서 탄생한 명작
패배한 청년의 초상
이홍 칼럼 [전체보기]
정신 줄 놓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
감정적 대응은 일본을 웃게 만든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부산 공공기관 혁신 이번엔 제대로 될까
서울 인구 1000만 붕괴의 명암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가을을 여는 모차르트
가을의 문턱에서…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삶
양해 바라지 말고 용서 구하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호생관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
연객 허필의 ‘묘길상도’
  • 동남권 관문공항 유치기원 시민음악회
  • 골든블루배 골프대회
  • 기장캠핑페스티벌
  • 제21회부산마라톤대회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