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아 피부로 느끼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무술년 신년사가 있던 날 기자가 사는 아파트에선 영 딴 풍경이 연출됐다. 경비·환경미화원들의 새로운 근무체제가 시작된 게다.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몇몇 분이 정유년 마지막 지는 해와 함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 바람에 초소별 경비가 없어지고 야간 당직자도 줄어 넓은 단지를 교대로 순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이러다 밤에 뭔 일이라도 터지면? 이 걱정을 하면서 신년사를 접했다. 1만 원 로드맵을 향해 16.4%나 올라 시간당 7530원의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새해.이의 후폭풍이 비단 기자 아파트에만 강타한 것이겠는가.
해가 바뀌면 누구나 크든 작든 희망적인 소망을 가지게 마련이다. 2018년 새해엔 아마도 취업이 1순위였을 거라는 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통계청의 지난해 11월 고용동향에서 실업률은 3.2%, 청년실업률은 9.2%에 달했다. 둘 다 1년 전보다 악화돼 실업률은 2009년 11월 이후 가장 높았고, 청년실업률은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한 문재인 정부의 고용 의지가 무색하다.
대통령이 말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본이 일자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소득을 높여주고자 대폭 인상한 최저임금이 새해 벽두부터 되레 근로자를 내쫓고 울리는 이 역설. 기자 아파트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자영업 420곳을 설문조사해 보니 75.8%가 감원을 검토 중이라 한다. 중소·영세 기업들도 인건비 부담을 덜고자 고용 축소 시기만 눈치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둑이 언제 터질지 모를 노릇이다. 시민단체 ‘직장 갑질 119’엔 오른 최저임금을 벌충하려고 고용주들이 상여금을 줄이거나 수당을 삭감하고 휴일을 없애는 등 노동조건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다.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편법’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게 생계형 노동자들의 딱한 처지다.
최저임금을 감당하려면 음식값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자영업자들은 말한다. LG경제연구원은 최저임금 10% 인상 시 소비자물가가 0.3%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최저임금을 높이면 소득이 늘어나 소비활성화로 경제가 되살아난다는 것이 정부의 소득성장 논리다. 하지만 거꾸로 서민의 호주머니를 비게 만들고 물가는 물가대로 꿈틀대니 결국 국민에게 이중 삼중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꼴이다. 게다가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 고용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의 무리한 정규직 전환 등과 같은 과속 행정·정책의 뒤탈도 적잖다. 새해 일자리 사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바로 정부 정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선한 정책이라도 원칙과 현실이 부딪히면서 현실론이 우세해지면 삶의 질 향상은커녕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정부는 올해 무역 1조 달러시대 재진입, 지난해에 이은 3%대 성장률을 기대한다. 세계 일곱 번째로 우리가 ‘30-50클럽(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에 들어갈 것으로도 보인다. 이런 경기 회복의 온기를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시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올리겠다는 게 신년사에서 읽히는 대통령 의지다. 그러나 지표 개선에도 불구하고 삶이 나아졌다고 느끼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여전히 소득은 제자리이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지난한 일 아닌가. 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작년보다 일자리 증가 폭이 9%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좁아진 일자리를 놓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형성될 판이다.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사람중심 경제는 대기업·수출에 의존해온 기존 경제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다. 올해는 이의 착근 여부를 가늠하는 해다. 북핵, 외교·안보, 지방선거 등 그 어떤 이슈보다 개띠 해 국민의 관심사는 경제로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경기 회복 여부를 얘기한다. 새로운 경제정책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결실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가르는 문제다. 그게 올해 달렸다.
삶의 질 개선은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 핵심은 일자리이며 만드는 주체는 기업이다. 민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는 혁신산업을 선정,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기업 쪽에선 규제 완화가 먼저라고 한다. 20대 국회 들어서만 690건의 기업 규제 강화 법안이 발의됐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오죽했으면 대한상의 회장이 신년 회견에서 “사회주의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과연 옳은 일이냐”고 하소연했을까. 이런 개혁 과제를 외면하고 정부가 모든 걸 해줘야 한다는 ‘착한 정부 강박증’으로 일자리를 만든다, 삶의 질을 높인다고 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