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간 지구촌을 둘로 가르는 유일한 경기’로 불리는 것이 바로 ‘엘 클라시코(El Clasico)’이다. 스페인어로 ‘진정한 승부’라는 뜻의 이 말은 스페인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전을 일컫는다. 양팀 모두 쟁쟁한 스타들을 보유한 채 지구촌 축구팬을 양분하고 있으니 ‘둘로 가른다’는 표현이 과장된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한국 영화의 부부싸움 소재로까지 사용됐을까 싶다.

두 팀간 첫 대결은 1902년 5월 13일 흔히 ‘스페인 국왕 컵’으로 불리는 ‘코파 델 레이’의 제1회 대회에서였다. 승자는 FC 바르셀로나(3-1 승). 1715년 필리페 5세에게 정복돼 스페인 군주국에 복속되기 전까지 카탈루냐의 수도였던 바르셀로나의 시민들은 열광했다. 또한 이 경기는 시민의 팀이 귀족 팀을 이긴 기념비적 대결이었다. FC 바르셀로나는 영국 캠브리지와 옥스포드에 유학한 귀족 및 부르주아 가문의 엘리트들이 세운 ‘마드리드’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지역의 일반 서민들이 창립한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 축구단, 즉 ‘시민구단’이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가 1920년 국왕 알폰소 13세로부터 ‘왕립’이라는 뜻의 ‘레알(Real)’ 칭호를 받아 ‘레알 마드리드’로 개칭되자 양 팀의 경쟁은 지역 간, 계급 간 대결의 상징이 됐다.

이후 엘 클라시코는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사생결단의 장’으로 격화된다. 국가주의를 앞세우면서 레알 마드리드를 지지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군부가 카탈루냐 등의 자치권을 인정하던 공화정부와 내전에 돌입하자 바르셀로나는 공화정부와 시민 저항군 최후의 보루로 남는다. FC 바르셀로나는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자선 경기를 벌여 저항군의 군자금을 댔다. 이에 FC 바르셀로나를 ‘카탈루냐 애국주의의 상징’으로 낙인 찍은 프랑코 군부는 구단주이자 좌익 사상가인 호셉 슈놀을 살해한다. 엘 클라시코에는 이처럼 ‘피와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난 23일 밤 열린 2017-2018 시즌 첫 엘 클라시코에서 FC 바르셀로나가 3-0 대승을 거뒀다. 115년 맞대결 사상 처음으로 마드리드 원정 3연승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카탈루냐 자치 의회 조기 총선에서 분리파가 135석 가운데 70석을 차지, 과반을 확보하면서 독립을 원하는 카탈루냐인들의 기쁨이 배가됐다는 소식이다. 축구 황제 펠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이라고 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축구는 결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임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