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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아베 총리가 깨닫게 한 우리의 선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21 19:40:2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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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5일, 독일 본의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주유네스코 사토 쿠니 일본 대사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1940년대에 일본의 몇몇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타 국민들이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forced to work). 그리고 제2차 대전 당시 일본 정부가 이러한 강제(노역)동원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강제동원에 대한 시인의 대가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요미우리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언론이 일본 정부의 허수아비가 되어 일본 스스로 발표했던 ‘forced to work’를 강제성을 가진 동원이 아닌 ‘하타라카사레타(働かされた)’ 즉 ‘억지로 일했다’ 또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일하게 되었다’라는 표현이었다고 자국민을 설득시켰다. 수천 명의 외교관과 세계유산 국제전문가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성명의 핵심 내용을 교묘하게 희석해 버린 것이다. 일본대사가 강제동원을 시인했던 그 순간에도 일본은 이미 다음 날의 왜곡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6개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중 강제동원이 자행되었던 유산들에 대한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기록하라는 유네스코 권고에 대한 일본의 대응보고서 제출 시한이 지난 1일이었다. 800여 쪽에 달하는 그들의 대응보고서는 핵심을 벗어난 채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체 역사’는 분명 유산의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전(全) 시간에 걸친 역사를 의미함에도 그들은 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세계유산이 가져야 할 탁월하면서도 보편적인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 속에서 여전히 메이지 시대의 산업역사 서술로만 일관하고 있다. 또한 밝히라고 한 희생된 노동자들의 역사도 1850~1910년 일본 노동자들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더군다나 강제노역의 사실을 설명해야 할 정보센터를 군함도 등 강제동원 유산들이 모여 있는 규슈에서 무려 1000㎞ 이상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교활하다. 지난 5여 년 동안 이들의 억지와 술수를 지켜본 필자의 입장에서 이 보고서의 내용이 역겹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이 메이지유신 150주년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는 메이지 혁명을 시작하게 했던 죠슈번(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첫해의 총리(이토 히로부미), 50주년 때 총리(데라우치 마사타케), 100주년 때 총리(사토 에이사쿠) 모두가 죠슈번 출신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 초유로 세계유산 등재를 문화청이 아닌 총리실이 직접 추진하고, 산업혁명과 관계가 0%인 하기(야마구치현 소재)의 쇼카손주쿠(메이지 시대의 침략사상가인 요시다 쇼인의 학당)를 억지로 산업혁명 유산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들은, 아니 정확히 말해 아베 총리는 왜 이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을까? 왜 강제동원의 역사를 은폐하고, 아시아 침략전쟁으로 점철된 메이지 시대의 역사를 아시아의 산업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그들만의 역사로 둔갑시키려 할까?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의 정치 세습과 역사 왜곡의 행태가 분노를 넘어 측은심까지 들게 한다.

보고서 내에 한 가지 눈여겨볼 곳이 있다. ‘한국인의 강제동원정책 관련 연구를 포함하여 제2차 세계대전 전, 중, 후 기간의 일본에 존재했던 한국인에 대한 연구(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라는 대목이다. 그동안 강제동원과 관련된 얼마나 많은 조사연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지금,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1세대 연구자들과 일본 내 시민운동가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떠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일본은 지난 시간의 모든 기록은 오류이고 또 무시하려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본에 주도권을 넘겨주면 역사 왜곡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800페이지의 보고서를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그들의 술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립하고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사태가 터질 때만 호들갑을 떨고, 중장기적인 관심과 투자는 등한시했던 우리 모습에 대한 반성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강제동원과 위안부관련 조사기록과 연구 작업에 우리의 젊은 학도가 뛰어 들 수 있는 건강한 토양과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마침 작년, 부산에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의 기능은 단순한 역사전시를 뛰어넘어야 한다.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전공자들이 모여 맘껏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연구자의 수가 만약 수십 명에 이른다면 어찌 일본이 우리를 함부로 경시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 저질렀던 지난 역사에 대한 연구의 대가 끊긴다면 우리 후손들은 일본의 역사 왜곡 앞에 분노만 터뜨릴 뿐, 국민의 자존감에 난 깊은 상처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유산을 왜 가지고 싶어 하는가? 그것을 쟁취하려 사실을 왜곡하고 속이고 또 다른 적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 일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다. 세계유산의 등재는 목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목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세계유산의 등재 취지는 그 과정에서 해당 역사물에 대해 스스로 진실해지고 역사물에 대해 몰랐거나 잘못된 인식을 바로 고쳐 잡는 것과 동시에 그 역사의 정신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하게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세계유산의 기본 정신을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 하지만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일본에 휘둘려 온 우리 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일본에 대한 대응과정 속에서 근본적이며 지속가능한 우리만의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고통받았던 선조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후손들에 당당해야 할 준비의 때가 되었다. 이번 기회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기를.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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