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가 다시 ‘몰염치’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장기 불황과 실업 등으로 국민의 시름은 깊어가는데 세비 인상과 보좌진 증원을 단행했다. 세비는 1억4000만 원으로 늘었고 보좌진은 9명으로 증가했다. 여기다 정책 개발비, 사무실 운영비, 차량 유지비 등 업무보조비가 1인당 1억 원가량 된다. 보좌진 9명의 급여까지 포함하면 연 7억 원가량의 세금이 지원된다.
이것만이 아니다. 정치후원금도 세비 이상 거둘 수 있다. 1년에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 등 선거가 3개 있으니 임기 4년간 능력만 있으면 정치후원금만 10억 원 넘게 모을 수 있다. 한 국회의원이 4년간 어림잡아 최대 17억 원을 국고나 후원금으로 지원받는 것이다.국회의원이 이처럼 ‘갑 중의 갑’이 된 것은 입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자신들의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 헌법에는 입법권을 국리민복을 위해 쓰라고 했는데 자신들 배불리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후안무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문제는 똑같은 의회 선출직인 지방의원의 무기력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재출범한 지 26년이 지났지만 지방의원의 위상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 부족과 지역 토호세력 논란은 흘러간 축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되풀이된다.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의 위상이 이처럼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에는 국회의원의 갑질이 자리 잡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늘리는 데는 민첩하게 반응하면서 지방의회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되레 정치적 경쟁자가 될 성싶은 경우에는 싹부터 잘라버린다.
지역구 기준으로 부산지역 국회의원(18명), 시의원(42명), 구·군의원(158명)의 숫자만 놓고 보면 국회의원 1명은 시의원 2·3명, 구·군의원 9명 정도의 규모다. 물론 다루는 예산과 유권자에 미치는 입법권 등이 큰 차이가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국회의원은 과할 정도의 지위를 누린다. 여기다 제도적으로 지방의회를 눌러 성장을 방해한다.
자신들은 야구팀을 꾸릴 정도로 보좌진을 두고 매년 억대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해놓고도 지방의회는 재정과 인력 등을 다 묶어 놓았다.
이 같은 배경에는 숱한 비판에도 꿋꿋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퇴행적인 공천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국회의원은 지방의원의 공천권을 사실상 쥐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의원들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부산지역 지방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지방의원들이 지난 탄핵정국 때 보인 행동을 보면 현재 지방의회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지역 국회의원을 따라 바른정당으로 탈당했다가 복당한 한 지방의원은 사석에서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에 가족 얼굴 보기도 민망하다”고 토로한 적 있다. 명색이 본인들도 선출직인데 지역 국회의원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행태는 가히 블랙코미디였다.
지방의회의 위상은 지방자치의 바로미터다. 이 명제만 대입하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아직 낙제점이다.
올해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역사적인 혼란기를 겪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경험했다. 헌법에 보장된 주권의 위엄을 확인하면서 위대한 한 해를 보냈다.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이제 지방분권의 정착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로 지방재정의 확대가 우선 꼽히지만 현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을 볼 때 그렇게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지방의회, 지방 정치의 건전성 및 자존감 확보다. 지금처럼 국회의원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고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되풀이되는 ‘지방의회 무용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내년 6월 13일 치르는 지방선거에서 개헌 투표가 함께 실시될지 초미의 관심이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이른바 ‘87 체제’의 발전적 파기이다. 87 체제가 지방자치의 부활을 이끌었다면 새 헌법 체제는 자치와 분권의 안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위로는 헌법에서 시작해 아래로는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정당별로는 과감한 혁신을 통해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한 장치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방의원 공천에 지역 국회의원 영향력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적 시스템 마련은 반드시 도입돼야 헌다. 시의회와 구·군의회도 자성의 시간을 갖고 중앙 정치 예속에서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을 잘 아는, 고향을 사랑하는 인재가 지방의회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것이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의 준엄한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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