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위께서는 인생을 동행할 친구가 있습니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하나의 지표는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다시금 던지게 한다. 상투적인 질문 같지만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자문자답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OECD가 35개 회원국에 몇 나라를 보태 ‘더 나은 삶의 지수’를 조사했다. 매년 발표하는 것이지만 이번에 드러난 우리의 실상은 더 안타깝고 우울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소득, 건강 등 여러 지표를 종합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9점. 통계가 잡힌 31개국 중 가장 낮았다. 2012년 그나마 24위에서 매년 떨어져 이 지경까지 됐다. 보다 처량한 내용은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친구나 친척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 비율이다. 41개국 가운데 최하위권. 단지 남의 얘기일 뿐인가.
‘천만매린’이라 했던가. 우리가 저 먼 옛날 송계아가 했던 생각의 한 치만이라도 갖고 산다면 이토록 씁쓸하진 않을텐데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고위 관리를 지낸 송계아가 남긴 사자성어가 새삼 떠오른다. 은퇴 후 노후를 보낼 거처를 구하러 다니다가 백만금밖에 안되는 집을 천백만금을 주고 대뜸 사버렸다. 주위에서 의아해 물으니 송계아는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 했다. 백만금은 집값이고, 천만금은 여승진이라는 옆집 사람과 이웃으로 살기 위한 값이라는 얘기는 유명하다. 좋은 이와 벗하려고 10배나 되는 프리미엄을 지불했다는 이 일화는 시공을 뛰어넘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믿고 의지할 둔덕 같은 친구가 없고, 이런 것들의 영향으로 삶의 만족도가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건 기실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이해된다. 아이 때부터 경쟁 사회에 내몰리고, 젊은이들은 취업난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신세가 됐다. 어찌해서 짝을 찾아도 맞벌이로 수입은 두 배(Double Income)지만 아이는 갖지 않는(No Kids) 딩크(DINK)족으로 살려 한다. 노인은 또 어떤가. 생계 시달림이 심각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2.7%로 OECD 회원국 평균(10.6%)의 4배 수준.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친구도 경쟁자의 한사람이 되는 세태. 경쟁의 격화는 개인주의를 낳고, 가정 중심의 사회가 무너지면서 핵가족화는 심화되고 있다. 곤경에 처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한데도 100살을 넘본다? 그건 그저 메마른 생물학적 수명일 따름이다.
최하위권 삶의 질이 말해주듯 세계 13위 경제대국임에도 ‘사회적 관계’는 밑바닥인 우리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성공 강박증’에 사로잡혀 주변을 배려하고 나누는 것을 등한시해온 결과다. 하기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계층 사다리가 사라지고, 세계 최악의 양극화와 소득불균형의 현실에서 사회적 관계 회복 운운은 앞뒤 안 맞는 소리일 수도 있다. 삶의 지수는 사회 정의 및 공정성과 연관돼 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국가와 정부, 위정자들의 책임이 적잖다는 말이다. 따지고보면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도 국민의 만족하는 삶에서 시작된다. 더 촘촘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비 오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적 연대를 높여나가는 일은 결국 개인의 몫 아닌가. 삶을 논할 때 재테크도 마땅히 긴요하지만 친구와의 돈독함에 투자하는 ‘우(友)테크’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그나마 유지하는 삶의 질조차 모래성처럼 허물어질지도 모른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망각했던 시간이 많았음을 이참에 자각하게 된다. 독자께도 물음을 던져본 이유다.
그러고 보니 친구와 더불어 참 재미있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지인이 생각난다. 60줄에 들어선 이분들은 특이한 개인기를 연마 중이다.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식으로 역을 맡아 술·밥자리에서 즉석 연기 훈련을 한다. 나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멀쩡한’ 사람들의 ‘생뚱맞은’ 광경에 손님들은 배꼽을 잡기 일쑤라고. 색소폰도 몇 년에 걸쳐 배워 수준급에 올랐다. 도대체 왜? 지금도 가끔 그들이 들려준 계획을 떠올리면 웃음부터 난다. 훗날 상설 소극장 하나를 마련해 ‘전직 대통령이 출연하는 풍자·개그 시사 토크쇼’를 무대에 올릴 거라나. 그날그날 신문을 펴놓고 성대모사로 갑론을박을 하는 형식. 색소폰 합주는 덤이고 입장료는 쌀로 받아 이웃을 도울 생각이라 했다. 친구끼리 함께 여는 인생 2막. 부럽지 않은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의 이 짧은 시가 주는 울림은 크다. 경쟁을 한답시고 위만 쳐다보고 갈 땐 몰랐다가 나중에서야 발견하게 되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행복. 여기엔 친구도 포함되리라. 삭풍의 12월. 목도리 같은 벗과 한 잔 기울이기 좋은 때다.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