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각자 하는 일이나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올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 환자가 세 명이 있다.
첫 환자는 60대 남자 환자로 소변이 참기 힘들다며 병원을 방문했다. 환자가 말하기 전에도 증상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환자가 앉자마자 풍기는 익숙한 소변 냄새 때문이리라. 그러나 옷이 소변에 찌들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그 환자가 그다음에 한 행동 때문이었다. 맞은편에 앉아서 증상을 얘기하던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로 몸을 훅 숙이고 들어와서였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도 나도 깜짝 놀라서 뒷걸음치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어나는 그 환자의 손에 들린 고구마였다.
“내가 배가 너무 고파서, 오늘 아무것도 못 먹어서”라고 얘기하는 환자를 보자니 순간 멍해졌다. 배가 고팠던 환자는 그저 진료실 책상에 있던 고구마가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환자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지만 추가 의료비용이 있어서 소소하게 먹을 것을 손에 들려주고 사회사업실에 경제적 지원이 되는지 의뢰를 하였다.
두 번째 환자는 70대 초반의 남자 환자이다. 그분은 전립선암 관련 혈액검사에서 정상보다 수치가 높게 나와 전립선 초음파 검사와 조직검사가 필요했다. 몇 번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검사하자고 말해도 차일피일 미루기에 혹여 암이라고 진단받을까 겁이 나서 그런가 짐작만 했다. 건강보험환자이기에 전립선암 의심의 경우 전립선 초음파 검사가 보험이 되니 비용도 낮아지고, 검사 수치가 자꾸 상승해서 추가 검사가 꼭 필요하다 강력하게 말씀드리니 그때서야 “애들한테 돈 달라 하기가 그렇다. 자기들도 먹고살기 힘든데…” 라고 말했다.
이런 비슷한 예는 드물지 않다. 재발성 요도염증으로 치료받던 한 여성 환자는 자식들이 “뭐 이렇게 자주 병원을 가느냐? 왜 갈 때마다 검사를 하느냐?”며 잔소리를 한다면서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애들은 모른다며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으시기도 했다.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경우도 있다. 본인은 소득이 없으나 수입이 있는 가족이 있어서 건강보험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그 가족이 연락을 끊거나 실제 벌이가 힘들어서 부모의 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경우이다.
세 번째 환자는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이주노동자 환자이다. 대부분 통역자를 동반하고 오거나 전화통역서비스를 이용해서 의사전달을 하고 있지만 의사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전달되는지 확인이 안 되니 답답할 때도 많다. 이 베트남 국적의 환자는 그래도 매달 병원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라 하더라도 그나마 이렇게 병원을 내원하는 경우는 지원단체의 도움도 받고 본인이 어느 정도 의료시스템에 대한 정보가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국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언어나 질환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의료기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라도 국민건강보험에 임의 가입할 수 있고 의료 지원 사업도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러한 제도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제도적 한계 역시 존재한다.
위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취약계층은 질병이 있어도 생계 걱정, 치료비 걱정, 간병 걱정, 퇴원 이후 주거 불안 등으로 인해 의료 취약계층으로 결국 전락하게 된다. 그나마 위 환자들처럼 병원이라도 오게 되면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앞선 여러 걱정에다 취약 계층에 대한 제도적 지원에 대한 복잡한 정보를 잘 알지 못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도 상당수다.
부산에서는 3for1 통합지원센터를 2015년 12월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보건 의료 복지를 통합하여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사각지대 환자를 발굴하고 지원하여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며 지역주민 네트워크 구축, 지역사회 건강지표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홀몸노인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 외국인근로자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소외계층, 의료급여와 차상위계층 건강보험가입자 중 중위소득 80%이하인 경제적 취약계층, 여러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복지 사각계층이 그 대상이다. 널리 알려져서 내년에는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가 많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