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사에 이런 얘기가 있다. 하나라 임금의 장남이 국사를 돌보지 않고 놀기만 하다가 결국 나라를 망치고 쫓겨나게 됐다. 이에 그의 다섯 형제가 맏형을 원망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 ‘顔厚有’라는 표현이 나온다. 백성들 보기에 ‘낯이 뜨겁구나’ 정도로 풀이된다. 여기의 후안(厚顔·낯이 두껍다)에 무치(無恥)가 더해져 후안무치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말은 철면피(鐵面皮).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수치를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유래는 중국 송나라 때 관리 왕광원. 출세욕에 빠진 그는 당대 권세가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온갖 수모와 문전박대를 당하고도 개의치 않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그의 낯가죽은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다”고 비꼬았다.

요즈음 여야 국회의원들을 보면, 이런 표현이 제격인 듯하다. 보좌관 수를 7명에서 8명으로 늘린 것도 모자라 그제 국회 운영위에서 세비(歲費) 2.6% 인상을 결정했으니 말이다. 지난해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20대 국회 4년간 세비를 동결하겠다는 약속은 1년 만에 날아갔다. 게다가 산적한 민생법안 처리는 미적거리면서, 해마다 67억 원이 추가 소요되는 보좌관 증원 법안은 여야가 ‘합심’해 속전속결로 통과시켰다. 하기야, 국회의원 혜택 늘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한통속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늘 그랬다. 20년 전, 그 엄혹한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여야는 ‘세비 30.6% 인상, 서기관급 보좌관 증원’ 법안을 추진하다 여론의 호된 비난을 받았다. 한 변호사는 여야의 이 법안이 ‘담합 입법’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그의 사무실에는 격려 전화가 쏟아졌다.

우리 국회의원의 연봉(올해 기준 약 1억4000만 원)은 OECD 국가 중 세 번째이나, 경쟁력은 꼴찌에서 두 번째다. 2년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분석 결과다. 돈은 많이 챙기고 일은 제대로 안 하는 셈이다. 이런저런 특권이 200개가 넘는데도 밥그릇 챙기기를 하니 철면피가 아닐 수 없다. 의원 4명당 보좌관이 1명이고 자전거나 도시철도로 다니는 스웨덴 국회의원은 우리에게 꿈같은 이야기다.

사실, 옛날에는 철면피가 ‘강직하다’ ‘준엄하다’라는 좋은 의미도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부정적으로만 쓰인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위정자나 국회의원 등도 거기에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