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대변(大邊)초등학교’가 내년부터 ‘용암(龍岩)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다. ‘용암’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9월 18일 교명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개교 54년 만이다.
그간 교명을 바꾸자는 제안은 수없이 나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 초에 부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학생이 교명 변경을 공약하면서 공론화되고, 동네 어른들과 학부모, 선배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부산 전역을 돌며 4000여 명의 지지 서명을 받는 등 학생들의 정성이 어른들을 감동시켰다.
‘대변’은 마을 이름 ‘대변리’에서 딴 것으로, 조선 시대 공물(公物) 창고인 대동고(大同庫)가 있는 포구를 뜻하는 ‘대동고 변포(大同庫邊浦)’를 줄여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의미를 모르더라도 ‘대변’은 ‘큰 바닷가’로 풀이되어 호연지기를 기르는 곳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주위에서 ‘똥학교’라며 놀릴 때가 많아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말이 원래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특정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언어의 반사적 의미다. 한송이(韓松伊)나 임신중(林信重) 같은 이름에서 앞엣것은 긍정적이나 뒤엣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대가리, 유방동, 하품리’ 같은 지명도 있다. 법원의 개명 신청의 대부분이 발음에서 오는 부정적 의미 때문이라 한다. ‘대변초등학교’ 교명도 이것 때문에 비롯된 일로 여기서 이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말 지명들이 세월 속에 많이 바뀌어왔다. 아득한 저 신라 경덕왕(757년) 때 일은 그냥 두더라도, 일제강점기인 1913~1914년에 고친 수많은 지명을 본다.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1940년의 ‘창씨개명(創氏改名)’에 앞선 가히 ‘창지개명(創地改名)’이라 할 수 있는 단군 이래 최대의 행정구역 개편 시의 지명에서다.
서울의 인왕산(仁王山)을 인왕산(仁旺山)으로 고쳐 왕(旺) 자가 일왕(日王)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포항의 대보리가 우리 국토의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데도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가 우리 지도를 토끼 모양으로 그려 호미곶을 토끼 꼬리라 하며 우리나라를 힘없는 조선으로 비하했다.
그때 군(郡) 97개, 면(面) 1834개, 이·동(里·洞) 이름 3만4233개가 없어지고, 새로 생겨난 지명만도 전체의 35%인 1만 1000여 개에 이른다. 땅에 아로새겨진 우리 정신에 대한 침략이요 핍박이었다.
부산 지명 중 그 하나가 ‘위봉(胃峰)’이다. 일제는 해운대구 장산 봉우리인 ‘주봉(胄峰)’을, ‘투구 주’의 윗부분을 없앤 ‘밥통 위(胃)’의 ‘위봉(胃峰)’으로 비하하여 우리의 민족정기를 흐리게 하려 했다. 실은 ‘대변’도 당시 용암동과 무양동을 합치며 옛 지명과 관계 없이 붙인 이름이다.
2003년에 개교한 반여동의 위봉초등학교는 한자를 ‘위봉(衛峰)’으로 했다. ‘밥통 위(胃)’를 피하여 ‘지킬 위(衛)’로 한자를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위봉(衛峰)’이란 산봉우리가 근처에 없기에 지역과는 거리가 먼, 별 뜻 없는 이름이 되었다.
2012년 10월 반여1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옛 이름을 살린 ‘주봉’ 정상 표지석을 세웠다. 주민들이 직접 지명 변경을 위해 나선 것은 우리 지명을 되살리려는 뜨거운 마음에서다. 괄호 속에 투구봉·장군봉을 쓰고, 해발 274m라 밝혔다. 국립지리원에 질의하여 확인도 했다. 이번 ‘대변초등학교’ 교명 변경을 보며 ‘위봉초등학교’의 교명도 역사 깊은 ‘주봉’으로 고쳤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의 교명은 한자는 다르나 일제의 치욕적인 이름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명은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 지형적인 특성을 반영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므로 이를 바꾸는 것은 가벼운 일은 아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물음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했다. 이는 지명에서도 받아들일 말이다.
전 부산한글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