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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오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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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11-24 19:43:5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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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150여 개의 튤립 알뿌리를 심는다고 몸을 쭈그렸더니 결국 목에 탈이 났다. 하지만 11월이 가기 전 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알뿌리를 심는 것만이 일은 아니었다. 알뿌리를 심기 전 화단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더 큰일이었다. 이미 수북해진 낙엽을 치워내고 아직 남아 있는 누런 줄기를 자르다 보니 한 해 동안 식물들이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보였다. 떨어진 잎이 어느 한구석 성한 데가 없이 만신창이다. 그런데 그 옆에는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는 국화도 보였다. 이미 새벽으로는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도 국화가 안간힘을 다 하는 중이었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국화는 보통의 식물과는 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따뜻하고 바람도 햇살도 적당한 날을 포기하고 추위가 다가오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이유는 다른 식물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른 꽃이 없으니 곤충에게 독점적으로 눈에 띌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도 녹록지는 않다. 곤충도 이미 겨울을 대비해 번데기로 사라지는 즈음이기에 눈에 띄게 줄어든 곤충이 찾아와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꽃을 피우는 시기도 그만큼 길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특기와 생존을 위한 무기가 있다. 그중 우리 인간은 뇌라는 특별한 특기를 가졌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구의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생명체 중에는 실은 뇌를 가진 생명체가 그리 많지 않으며 게다가 우리처럼 이렇게 크고 복잡한 뇌를 가진 경우가 없다. 예를 들면 아픔과 이로 인한 고통과 관계되는 뇌의 작용이 좀 다르다. 배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신경에 의해서고, 배가 아파서 고통스럽고 사는 게 힘들다는 감정은 전두엽의 피질이 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용은 뇌가 있다고 해도 인간처럼 복잡하게 발달된 뇌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조심할 일이 있다. 지구 생명체의 개념에서 본다면 우리처럼 뇌가 발달한 생명체가 상위 개념이고, 뇌가 없는 생명체는 덜 진화된 하위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뇌가 이토록 발달한 것 역시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갖고 있는 생존의 무기일 뿐이고 다른 생명체는 또 다른 특기와 무기로 이 지구에서의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기도 하다.

다윈의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택하는 삶의 방식을 설명한 과학 논리로 이 노력을 바로 ‘진화’라고 봤다.이 논리에 의하면 결국 인간의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큰 뇌 역시도 생존을 위한 우리만의 진화인 셈이다. 실제로 우리는 뇌를 이용해 공부를 하고 공부를 통해 수천 년의 선행 지식들을 받아드린다. 이 점이 호모 사피엔스 종을 지금 최강의 지구 생명체로 만들고도 있다. 그래서 공부는 해야하고, 우리가 자식 공부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좀 더 진화된 건강한 삶을 바라는 본능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함정이 생기고 말았다. 우리는 최근 좀 더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 해야할 공부의 과목을 정하고, 방식을 제시하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 평가하는 방법을 아주 세밀하게 연구해왔다. 하지만 이 세부적인 노력이 오히려 요즘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모든 식물이 봄과 여름에 꽃을 피울 필요가 없듯이, 모든 식물이 같은 향과 모양을 지니고 있을 이유가 없듯이, 각자에게 맞는 공부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의 과목은 100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역사적으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공부를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내가 경험한 영국에서의 공부는 해야할 과목, 그리고 방법, 최종적으로 그 공부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매우 달랐다. 가끔 우리나라에서는 꼴찌를 하던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최고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는 뉴스도 접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아이가 갑자기 달라진 것이 아니라 배움의 과목과 방법,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공부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상위 개념으로 돌아갈 필요도 있다. 국화가 가을이라는 위험한 계절에 굳이 꽃을 피우는 까닭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듯 우리의 학습도 우리의 건강한 생존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 이로 인해 고통받고 불행해진다면 뭔가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그저 오르는 발걸음 한 발 한 발에만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산을 오르는지를 잊을 때가 많다. 잠시 멈춰야 풍경이 보이고, 지도를 다시 한 번 봐야 내 위치가 나타나고, 잘못 가고 있다면 방향도 바꿔야 한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도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보자.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로 인해 정말 건강하고 행복해져야 한다.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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