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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유커가 돌아온다고요?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1-23 18:57:0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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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동중국해 남부에 위치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일어난 중국인들의 반일시위 현장에 있었다. 베이징 주중 일본대사관 앞은 그야말로 홍색 물결이었다. 수천 명에 이른 시위대는 편도 5차선쯤 되는 도로를 가득 메운 채 반일구호를 외치며 정문 너머 대사관 안으로 물병을 던졌다. 그런데 너무(?) 질서정연해 1990년대 대한민국 시위에 익숙한 구경꾼 눈에는 잘 짜인 각본의 연출 같았다.
   
시위대는 30m 정도의 길이로 나뉘었는데 무리마다 좌우와 후미는 공안(公安:경찰)이 에워쌌고, 군중은 단 한 발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각 무리의 선두에는 격한 구호를 선창하며 시위를 이끄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사관 정문에 이르면 그들을 시작으로 물병과 계란이 투척됐다. 투석은 없었다. 폭력도 없었다. 대사관 안에 있는 일본인들은 그 끊임없이 이어지는 홍색 물결에 두려움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시위에 나선 이들의 눈빛은 자부심 가득했고, 한마당 축제의 놀이 같았다. 

폭력이 있기는 했다. 대사관 경비구역을 벗어난 곳에서였다.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일부 식당 같은 곳에서 유리창이 깨지고 붉은 페인트가 칠해지기도 했지만 진짜 폭력은 엉뚱했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일본 브랜드 자동차들이 무차별 공격을 받아 부서진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차량 번호판을 보면 소유자가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할 수 있다. 중국인은 청색 바탕, 외국인은 흑색 바탕. 그때 부서진 많은 일본 브랜드 자동차의 대부분은 청색 바탕 번호판이었다. 그것도 중국 땅에서 중국인의 손으로 생산한. 흑색 바탕의 차량이 공격받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는 없었다. 

분노의 목청은 큰데 질서는 정연하고, 일탈은 공안의 눈을 피하지만 공안도 굳이 그 일탈의 폭력을 찾으려 들지 않는 수상함이라니. 한바탕 광풍이 가라앉자 국가는 아무런 말이 없는데 그들은 스스로 일본계 업장에 발길을 끊기도 했다. 참 착한 중국 사람들이어서였을까. 속 깊은 그들의 심성을 어찌 알 수 있을까만 그 후로도 아주 한참 동안, 두 나라의 관계가 풀리기 전까지 백화점을 비롯한 일본계의 여러 업장과 기업은 고전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로 인한 사드 배치에 따라 최악으로 치닫던 한중 관계가 어정쩡하게나마 일단 매듭이 풀리는 것 같다. 그에 따라 먼저 유커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하루 벌어 살기 바쁜 소상인은 말할 것도 없고, 큰돈을 투자하고 파리만 날리던 면세점도 모두 기대 만발인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대로 잘 풀리고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2005년의 반일시위를 현장에서 목격하며 든 무섭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개별적 국민이 아니라 국가를 이루는 각각의 구성요소 같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기꺼운 자부심으로. 

주권국가의 절박한 안보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임에도 속국을 대하듯, 21세기 세계 상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해괴한 보복이 시작되자 그들은 변함없는 2005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단체관광이야 국가의 직접적 규제를 받는 여행사가 창구를 닫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개별적 관광까지 거의 사라지고, 롯데마트를 비롯한 한국계 기업에 대한 우악스럽고 치졸한 당국의 보복에 맞장구치는 격한 시위. 결국 자신들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도 큰마음 먹고 떠난 크루즈 여행일 텐데 대한민국 항구에서는 한 사람도 하선하지 않는 일사불란한 경이로운 행태!

중국인은 나라가 혼란하고 힘이 약하면 차라리 떠난다. 지구촌의 많은 화교가 그 후손이다. 그렇지만 남아 있던 이들은 나라의 힘이 커지면 그만큼 깊은 자부심으로 금세 동화된다. 우리처럼 ‘흙수저’ ‘헬조선’ 따위의 자각이나 불평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 따위는 애초에 싹이 잘린다. 국가의 뜻과 상관없는 개별적 판단과 의지에 따른 행동은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돌아오는 유커는 따뜻하게 환영해 맞을 일이다. 옥죄던 숨통이 풀리면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 다시 가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떠나고 더 우악스럽게 목을 죌 수 있다는 사실은 한시도 잊어서 안 된다. ‘중국몽(中國夢)’은 칭기즈칸의 원(元)과 같은 대제국의 야망이다. 그런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한·당(漢·唐)이나 명·청(明·淸) 시기의 한반도일 뿐이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공정을 보면 영토적 야심에 대한 의심도 거두기 어렵다. 21세기에 무슨, 할지 모르지만 북한이라는 변수는 언제라도 화근이 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반감은 캐낼 수 없을 만큼 뿌리 깊다. 그럼에도 일본의 문화와 상품에는 깊이 수긍한다. 적이지만 두렵고 배울 것이 있는 일본, ‘왕서방’ 돈 잔치면 열광하는 만만한 한국이 마음속에 감춘 냉정한 그들의 시각이다. 이참에 우리도 근본적인 전환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강함은 아무래도 국가의 몫이 크겠지만 당장은 기대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우리 각자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친절하면서도 당당한 자세로 만만치 않음을 보여야 한다. 이미 겪은 바이지만 마냥 비위를 맞춰준다고 변하지 않을 그들이 아니다. 오히려 영토는 작지만 간단치 않은 국민이라는 경외감이 그들의 속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청정과 청결, 단절되지 않은 전통 속의 예의와 질서는 중국인뿐 아니라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인정하는 우리의 강점이다. 아쉽다면 일본의 그것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데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단절될 수 있는 한쪽에 지나치게 기대하는 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때마침 정부도 아세안 제국(諸國)과의 교류협력 강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간에서도 그에 발맞추는 준비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의 이전이나 투자는 물론이고 개인의 관광에서도 그들이 고개 끄덕일 품위로 우리의 격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시작이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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