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역사적인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2017년 가을이다. 세계사에서 한국사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위인, 선각자 중에서 유독 말이다. 지난달 31일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중세 로마 가톨릭에 메스를 가해 종교, 사회적으로 일대 변혁을 몰고 온 종교개혁 500년 기념일이었다. 당연히 95개 조항의 교황청 고발문을 내걸고 개혁 불씨를 당긴 마르틴 루터를 생각할 터. 하지만 이참에 기자가 주목하는 이는 체코 프라하대학 교수였던 얀 후스다. 또 한 사람은 내내 열을 받으면서 본 영화 ‘남한산성’이 불러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517년 10월 31일 올려진 루터의 종교개혁 깃발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에 훨씬 앞서 얀 후스가 면죄부를 팔아먹고 신앙을 정치화하는 등 세속주의에 빠진 로마 교황청의 혁파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후스는 결국 교황청에 의해 1415년 화형을 당한다. 신분을 보장할 테니 시시비비를 가려 보자며 부른 뒤 체포해 악독한 고문을 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화형장에서 후스가 토해낸 사자후는 유명하다. ‘100년 뒤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나는데 그땐 아무도 끄지 못할 것’이라 했다. 루터가 딱 102년 만에 들고 일어났으니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역사의 필연이 아닐 수 없다.
얀 후스나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130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 신학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의 종교개혁 필요성이 민중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대단한 이론에 있지 않다. ‘교회 본질로 돌아가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이성에 합당한 주장이 교황청 교권주의에 억눌린 중세사회 저변에서 소통의 물길을 연 게다. 이런 공감대가 쌓이고 쌓여 왔기에 루터의 개혁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져 성공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개혁이라는 것이 어느 한순간 뚝딱 실현되는 게 아닐뿐더러 넓은 공감을 이뤄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연도를 따지면 류성룡 선생은 마르틴 루터 생의 마지막 때쯤인 1542년 출생했다. 그를 빼고는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음은 모두가 잘 알 터이지만 이 가을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하는 데는 나라 안팎이 뒤숭숭해서일 것이다. 그가 비겁한 임금 대신 임진왜란 국난을 극복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찌 됐을까. 선생이 ‘징비록’에서 반복해 썼듯이 그의 존재 자체가 ‘천찬(天贊·하늘의 도움)’에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이 임진왜란의 참혹함을 겪으며 더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며 징비록을 남겼으나 그 뒤 조선은? 익히 알듯 조정은 꼭 지금 우리의 정치권처럼 여전히 붕당과 당색만 논하다 30년 후 정묘·병자호란을 자초하며 또다시 민초들만 죽어났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인조가 남한산성에 틀어박혀 항복 굴욕을 당한 걸 보면 서애 선생이 피눈물로 쓴 징비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리라.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환에 대비하자는 징비록의 교훈은 어려운 게 아니다. 주변 정세를 잘 파악해서 미리 대비할 것과 국가 지도자 및 야전 지휘관의 자세와 중요성을 일깨운 것이 행간에서 읽히는 요지다. 지극히 상식적인 가르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류성룡 종택 등을 방문하고 ‘징비(懲毖)’를 되새긴 것도 지금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이라 봤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를 다시 만들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과 선제적 외교·안보 위기 대응이 필요한 때 아닌가.
새 정부 1호 국정과제인 적폐청산도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삼가겠다는 징비 정신에 입각한 것에 다름 아니다. 청와대 지시로 정부 부처별로 적폐청산 테스크포스(TF)가 구성돼 이전 정부의 비리나 법 위반은 물론 정부 정책까지 살펴보고 있다 한다. 서울중앙지검 인력 40%가 동원돼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16개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란 말도 들린다. 방식이 어떻든 강력한 개혁 의지를 두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정상으로 보기 힘든 장면이 자꾸 연출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의혹으로 수사받던 검사와 변호사가 잇따라 자살했다. 이들이 2013년 국정원 파견 당시 댓글 수사 방해를 위해 허위로 사무실을 만들고 위증토록 한 게 사실이면 중대한 범죄인 건 맞다. 진상 규명과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적폐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길래 사람이 목숨까지 버리는 비극이 일어나나.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큰 개혁이든 작은 개혁이든 개혁은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진행돼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성을 깨우친 종교개혁이나 징비의 토대로 그럴 것이다. 마치 복수하듯 감정적으로 부수고 파괴하는 건 개혁이 아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면서 또 비정상을 낳는다면 요즘 소위 말하는 ‘신적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잘못은 바로잡되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한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나.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