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어느 건축디자인 업체가 최근 전시회에 파격적인 사무실 형태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가슴 높이 정도의 테이블 앞에 서 있거나 벽에 기대고, 혹은 눕고 앉는 등의 다양한 자세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음으로써 생기는 여러 신체적 문제를 해결하고 업무 효율성도 높이려는 의도다. 이 전시품에는 ‘좌식의 종말(The End of Sitting )’이란 이름이 붙었다.

예부터 온돌·좌식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앉아서 지내는 게 몸에 뱄다. 서양에선 공간 난방으로 입식 문화가 발달한 데 비해 우리는 ‘구들’로 바닥 난방을 중시하는 영향이 크다. 앉는다는 건, 정서적 측면과도 연관이 많은 거 같다. 감정이 격한 사람을 달랠 때, 먼저 그 사람을 자리에 앉히고 본다.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 양쪽을 말릴 때도 마찬가지다. 앉힌다는 게, 격앙된 상태를 누그러뜨리는 비법인 셈이다.

장터에서 물건값을 흥정할 때도 입장 차가 팽팽하면 “우리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일단 앉으면 타협이 잘 이뤄져서 그런 듯하다. 누군가와 내밀한 대화를 할 때도 그렇다. 사람은 서 있을 때보다 앉아 있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마음이 너그러운 까닭이다.

하지만 바닥이든 의자든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이 건강에 해롭고 각종 질환을 불러온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한국인의 무릎관절 손상률이 10.6%로 미국사람(3~5%)보다 높다는 학회 발표가 단적인 예다. 하루 6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사망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보고도 미국에서 나왔다.

얼마 전 옥스퍼드대 등의 영국 연구진이 의학회지에 내놓은 보고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버스나 도시철도에서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선의가 오히려 노인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노화와 신체적 쇠약을 구별해야 한다. 노인들이 덜 움직이도록 권장해선 안 된다. 서 있는 건 노인에게 훌륭한 운동이 된다”고 설명했다. 어르신에 대한 자리 양보가 공중도덕인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행위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

잠시 앉아서 간다고 몸에 탈이 나거는 건 아닐 터다. 결국 신체활동이 건강에 중요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뜻이다. 짬짬이 5분 정도의 걷기만으로도 장시간 앉아있기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역시 걷는 게 남녀노소 모두에 좋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