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람,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풍 시즌이다. 다음 주말이면 절정에 이른다. 푸른 초록색 잎이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붉은 색으로 변하겠지만, 우리는 그냥 붉게 물든 가로수나 붉은 빛 가득한 산천의 풍광 그 자체에 감동을 받는다. 일년 중 이맘때면 볼 수 있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을 향기의 이미지이다.

캐나다에 문화관광을 가면 많은 사람이 메이플 시럽을 구입해서 온다. 뜨거운 핫케이크에 뿌려먹거나 핫커피에 타서 먹으면 제 맛인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 국화인 단풍나무의 수액으로 만든다. 설탕을 대체하여 단맛을 내므로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핫케이크에 잘 어울리는 메이플 시럽이 발견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어느 봄날, 남편이 사냥해 온 사슴을 요리하기 위해, 부인은 물을 긷는 곳이 너무 멀어 대신 단풍나무에 구멍을 뚫어 거기서 나온 수액으로 고기를 익혔다. 잠시 후 솥을 열어 보니 고기가 너무 탄데다 딱딱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침내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솥 안의 고기를 꺼내 들고 입에 넣었는데, 그 고기가 너무도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후 메이플 시럽이 널리 퍼지게 됐다.

일본의 3대 비경으로 알려진 미야지마섬이 있다. 히로시마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이 미야지마섬에 상륙하면 해안가 갯벌에 세워진 신사의 문인 붉은 색 도리이와 이츠쿠시마신사(嚴島神社)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신사는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현재 문화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사 건물은 높은 기둥 위에 건물이 세워진 고상 구조로 꽤 유명하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면 신사와 도리이 건물의 높은 기둥이 바닷물에 잠긴다. 해중에 솟은 붉은 도리이 문과 그 너머로 지는 붉은 해의 풍경은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지상의 파라다이스이다. 반대로 썰물 때는 도리이 주변 갯벌에 많은 사람이 걸으면서 파래와 따개비, 조개를 보며 즐긴다. 그런데 이 지역의 토산물로 알려진 단풍나무 잎 모양의 모미지 만주는 인기가 있다. 모미지는 단풍을 뜻하며, 만주는 빵과자를 가리킨다.

붉은 단풍 이상으로 붉디붉은 치열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선택한 스승에게 깊은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혜가의 단심은 유명하다. 혜가는 숭산 소림사에서 참선에 든 달마에게 불법을 묻고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밤새도록 눈을 맞으며 기다렸다. 마침내 팔뚝을 베어 달마에게 바쳐 자신의 단심을 보여준 혜가단비(慧可斷臂) 스토리는 너무나 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혜가는 중국 선종의 제1조 달마의 법통을 이어 제2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혜가단비 고사는 선종계 사찰이나 선승 화가들에게 창작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달마와 혜가의 극적인 스토리를 시각화한 이미지는 사찰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단풍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한 인근 범어사를 찾아가 보자. 주불전인 대웅전 내부 불단의 우측 벽 앞쪽 퇴칸 포벽에서 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음미할 수 있다.

붉은 색 바람을 일으킨 불화도 있다. 붉은 바탕에 금가루 즉, 금니를 아교에 으깨어 그린 조선 시대의 소위 홍탱 불화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실 관계자가 발원한 그림 중에 붉고 금빛으로 빛나는 불화가 눈길을 끈다. 비단 바탕에 붉은 주색을 바르고 그 위에 금니선으로 도상을 그린 선묘불화이다.

이 같은 불화를 당시 ‘순금화’혹은‘금화’라고 일컫기도 하였다. 비일상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데 가장 강렬한 붉은 주색과 금빛 선, 이들에 의한 환상적인 표현은 종교화로서의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왕실 관계자들은 붉은색에 독자적인 색채 가치를 지닌 금으로 장식된 불화를 후원함으로써 공덕을 쌓은 것이다. 붉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그 바람을 이루고자 하였던 발원자의 단심인 것이다.

지난해 끝난 인기 드라마 ‘도깨비’에서 여주인공이 도깨비에게 붉은 단풍을 건네주는 장면이 있었다. 아마도 도깨비와 여주인공의 붉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한 것일 것이다. 이제 색 바람 시즌이다. 곧 단풍의 절정기이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단풍잎을 서로 건네주는 이가 많아졌으면 한다. 희망을 잊지 말고 붉은 마음을 꼭 품어보자.

동아대 교수·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