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단편영화제가 주최하는 야외상영회 ‘옥상달빛극장’이 서구 천마산 에코하우스와 동구 이바구캠프에 이어 지난달부터 ‘찾아가는 달빛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중구 40계단을 찾아왔다. 야외극장의 정의는 ‘거리의 광장이나 마을의 빈터 따위에 특별한 시설 없이 마련한 극장’이다. 언뜻 보면 야외극장을 여는 일이 손쉬워 보이지만 사실 야외극장만큼 준비가 많이 필요한 행사도 드물다. 상설극장이 아닌 경우 매번 상영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도심에선 도로통제와 주민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날씨와 같은 현장변수들도 항상 잠재해 있다.

찾아가는 달빛극장의 친구로 함께한 모퉁이극장은 중구 구민으로서 우리 마을에 야외극장이 생긴다는 설렘과 자부심을 안고 행사를 준비했다. 야외상영회의 성공적인 안착을 바라며 두 편의 상영작 선정에 고심했다. 행인들이 영화의 정취에 이끌려 발길을 40계단으로 돌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러 영화의 소리를 크게 틀어보며 사전 테스트도 해보았다. 그렇게 선정된 첫 번째 영화가 ‘록키’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우연히 무함마드 알리와 무명선수 척 웨프너의 경기를 본다. 그리고 3라운드 전에 웨프너가 패할 것이라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5라운드까지 버틴 웨프너의 파이팅에 감명받아 3일 반 만에 각본을 완성한다. 감독 존.G.아빌드센은 상투적인 내용이지만 거북이를 키우는 록키의 일상과 아드리안과의 데이트 같은 소박한 장면에 반해서 연출을 결정했다. 영화 속 록키의 방은 실제 스탤론이 살던 방이고, 록키가 입던 옷 역시 실제 스탤론의 옷이다. 제작사의 홀대 속에 저예산으로 28일 만에 만들었음에도 대흥행을 기록, 아카데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았다.

작품 선정을 위해 여러 번 다시 본 록키에는 스탤론의 첫 마음과 서민의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그건 가난한 무명배우였던 스탤론의 삶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록키는 거리와 골목, 계단에서 한 약속을 버텨내는 이들을 위한 영화였다. 오늘도 늦은 밤까지 작업실에서 우두커니 붓질을 하고, 책방골목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고, 백년어서원에서 독서모임을 꾸리는 시민들을 떠올리며 40주년의 록키를 40계단 앞으로 불러들였다.

첫 야외상영회가 잘되기를 바라며 관객활동가 모두가 열심히 홍보했지만 당일엔 기대만큼 관객이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체험하고 배웠다.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계단에 앉았고, 가족 단위로 영화를 보러 온 시민, 연인에게 자신의 인생영화를 보여주러 온 청년, 객석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 관객활동가들과 또따또가의 작가들, 관객들의 사진을 찍던 40계단문화관 계장님까지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이 그날 밤 첫 상영회를 축하하며 야외극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끝까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 잠시라도 안부를 나눴다. 40계단의 달빛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가 돕고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은 어둑해졌고 사람들은 40계단에 앉아 영화에 빠져들었다. 이미 수십 년 전 봤던 영화를 골똘히 다시 보는 관객, 처음 보는 관객 모두가 영화에 몰입해갔다. 상영회가 끝나자 SNS에 사진들이 올라왔고 여러 시민의 댓글이 이어졌다. 놓쳐서 아쉽다, 운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열렸으면 한다, 서울에도 이런 행사가 생기면 좋겠다, 오래전부터 40계단에서 야외상영회가 열리기를 고대했다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열린 두 번째 야외극장에서는 앉을 좌석이 모자랐다.

원도심의 추억이 깃든 중구 중앙동 일대는 현재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거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곳에선 고급스러운 예술보다 시민과 호흡하며, 시민과 함께해야 완성되는 문화예술이 꽃피고 있다. 40계단을 오르내리며 또따또가의 시민예술교육을 받고, 모퉁이극장의 관객문화활동에 참여하고, 보수동 책방골목과 백년어서원 등을 오가는 시민들이 이 야외상영회의 주인공이다. 그러한 시민들의 삶 속에 문화예술활동이 스며들기를 응원하는 이 지역 고유의 문화가 극장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40계단 야외상영회가 아닌가 한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은 역대 고전 영화 베스트 100 목록에서 항상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영화이자 온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명작 ‘오즈의 마법사’가 우리를 기다린다.

모퉁이극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