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는 연구개발(R&D)을 ‘관리’가 아닌 ‘경영’의 시각으로 보는 가운데 자신들이 발주하는 모든 연구개발사업에 PM(Project Management·프로젝트 ‘경영’) 기법을 도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에너지부 담당자들은 최고 수준의 PM 기법을 자신들의 R&D 사업에 적용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얻어지는 수많은 경험은 문서화를 거쳐 ‘교훈’이란 이름으로 기관 자산화하고, 후속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긴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노하우 심지어 실패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포함된,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교훈을 연구개발 경쟁력으로 재활용한다. 이러한 ‘교훈’의 체계적인 관리 또한 PM 기법의 하나다.

정해진 시간과 한정된 예산 아래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설계된 과제를 프로젝트라고 할 때, 모든 팀원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전에 서로 머리를 맞대 프로젝트 구성요소를 세분화하고 일정과 비용투입 계획 등을 기획하며,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리해가는 일련의 경영기법이 PM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팀원은 관리대상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로 인식되기 때문에, PM을 ‘사람 중심’의 경영기법이라고도 한다.

PM에서는 각자 임무가 더욱 투명해지는 가운데 팀원 간 ‘신뢰’와 ‘협업’을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통해 최적의 전략과 기획을 지속적으로 보강함으로써 프로젝트의 성공가능성을 한층 높여 나간다. 주요 선진국들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불확실성이 높은 연구개발 프로젝트에는 어김없이 PM을 적용한다. 연구책임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기획·관리되며 팀원 간의 소통이 부족한 우리의 R&D문화를 혁신하는 데 PM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R&D 투자 대비 효율성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R&D 혁신이 늘 강조되는 이유다. R&D 효율성에는 기획과 예산 배분에서부터 평가 및 성과 활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수많은 정책적 수단이 연관된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연구개발 계획과 단위 프로젝트 기획은 타당한지, 이에 따른 예산투자는 제대로 이뤄졌는지, 프로젝트 수행 및 관리 과정은 합리적인지, 권리성이 강한 지식재산권(IP)은 창출되고 있는지, 기술금융은 잘 작동되는지, IP와 최종재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시장과 잘 연결되는지 등 과정별로 세밀한 점검과 혁신이 필요하다.

창의·도전·기초연구 등 소규모 연구 분야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형 국가연구시설 및 장비 구축사업이나 일정 예산 규모 이상으로 연구자들의 협업이 필수적인 대형 프로젝트에 먼저 PM을 적용해 보고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M 기법을 도입하면 연구의 품질 제고는 물론 정부에서 중점 추진 중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우리 연구현장에는 PM을 어떻게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좋을까? 우선, PM 기법을 확산하기에 앞서 연구계-사회-정부 간, 그리고 연구계 내부에 상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PM을 적용하면 프로젝트 수행과정이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호 간의 신뢰는 굳건해진다. 성실도전 문화도 정착되고 ‘교훈’도 빠르게 자산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의 ‘인식개선’이다. PM은 관리를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성공과 효율을 높이는 지름길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의 탄탄한 ‘제도적 뒷받침’이 매우 중요한 몫이다. PM 가이드라인을 보급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R&D 특성을 고려해 리스크를 감안한 예비비(contingency reserve)를 프로젝트 내에 반영토록 허용해야 할 것이다. 프로젝트 성공은 초기 기획의 충실성에 좌우되므로 내실 있는 ‘기술성 평가’와 ‘예비타당성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점검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올바른 자세, 즉 ‘폼’이라고 한다. PM이야말로 연구개발 혁신을 가능케 할 ‘폼’이다. 이제 우리도 PM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탄탄한 기본기를 갖출 때다.

미래부 전 과학기술전략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