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은 요란하다. 매년 5월 9일이면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이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승전 72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종 무기가 동원된 화려한 열병식이 열렸고 이런 모습을 보려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역설적인 것은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라는 점이다. 1941년 독일과 전쟁을 시작한 이래 종전 때까지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27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숫자가 3000만 명대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피해가 이처럼 컸던 것은 무기의 질과 전략 등에서 독일군에 뒤진 러시아가 인해전술로 맞선 까닭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과연 승전국인가라는 논쟁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2차 세계대전은 벌써 70여년 전의 일. 지금에는 러시아가 사용했던 무식한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대량 살상무기가 즐비한 시대에 병력을 한 군데 모은다는 건 자멸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현대전에서의 승패는 첨단 무기를 누가 많이 갖고 있는가에 따라 갈린다. 대포의 포신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군대가 표적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장비를 갖춘 상대방을 이길 수 없음은 자명하다. 장기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력의 뒷받침도 승리의 중요한 요건이다. 경제력이 곧 군사력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초점을 한반도에 맞추면 이런 공식이 100% 맞다고 확신하기가 힘들어진다.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까닭에 당연히 군사력도 월등하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수치상으로 보면 양측은 비교가 무의미하다.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1위인 1조4112억 달러로 북한보다 45배가량 많다. 국방비만 해도 2015년을 기준으로 할 때 북한은 우리나라의 20%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내년 국방예산은 43조1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6.9%가 늘어났다.

하지만 양측의 군사력 실상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 최근 국내의 한 기관이 미 국무부의 세계 군비 지출 보고서를 토대로 분석을 해보니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의 2.2배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적인 무기 성능은 떨어지나 핵과 미사일, 잠수함 등의 전력에서 우리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북한의 정규군은 120만여 명으로 남한의 60만여 명보다 훨씬 많다. 유사시 미군의 증강 화력으로 북한군의 공세를 상당 부분 저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위협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쯤 되면 우리가 매년 북한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전력이 열세인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그렇다지만 다른 분야에서조차 대북 억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국방비는 역대 정부의 예산안 편성 때 신성불가침 구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휴전선 이북에서 북한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상 이를 줄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여기에다 군당국은 국방예산 동결이나 삭감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늘 전력이 북한에 뒤진다는 말로 불안감을 자극했다.

반면 그 많은 국방비가 적재적소에 사용되고 있는지는 한 번도 명확히 밝혀진 적이 없다. 전력증강에 사용하라고 배정된 예산이 개인과 관련업체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방산비리가 속출해도 정부와 군당국은 속시원한 근절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병사들의 생존율을 높여줄 방탄조끼나 철모가 부실하게 만들어지고 국가가 지급해야 할 군용장비를 개인이 사비를 들여 구입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책임을 지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수십년 전에 사용하던 낡은 내무반이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에 자식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분노를 삼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방부와의 만남에서 “북한이 비대칭 전력을 고도화하는 만큼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하나 그 많은 돈을 갖고 뭘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언급한 것은 아주 적절한 질타다. 나라를 지키라고 할당된 세금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했다. 절대 총액 면에서 우리 국방력이 북한을 압도해야 함에도 북한의 도발에 쩔쩔매는 현실은 누구라도 용납하기가 힘들다.

정부는 문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국방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국방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원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군사력 증강에 걸림돌이 되면서 적폐로 지목된 방산비리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군도 오랫동안 답습해온 잘못된 관행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 어떤 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한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