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경남 김해 장유의 독서클럽 ‘다독다독’에서 한수산 작가의 ‘군함도’를 함께 읽었다. 영화 ‘군함도’가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왜곡 논란으로 이슈가 된 탓인지, 먼저 출간된 소설 ‘군함도’ 역시 주목받았다. 그러나 한 작가의 ‘군함도’는 영화의 원작은 아니다.
이 작품은 27년에 걸친 현장 취재와 자료 조사, 그리고 수차례의 텍스트 개작을 통해 완성된 역사소설이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분량은 1000쪽에 육박한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18㎞ 떨어진 미쯔비시광업소 타까시마탄광의 하시마분원을 지칭한다. 소설은 조선이 일제의 강압적 지배를 받던 시기 중에서도 본격적인 강제 징용이 이루어진 국가 총동원령 이후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인을 회유하고 동화시키고자 했던 일본의 태도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발발 후 급변한다. 물론 1920,30년대에도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수탈이 있었지만, 일제 말기에 이루어진 박해와 탄압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한수산의 ‘군함도’는 1945년 8월 나가사키 원폭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전시 총동원체제 이후 발생한 조선인 강제연행의 폭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문화적 사료가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상’이다. 일제 말기에 ‘강제 노무징용’에 끌려온 인물로, 그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징용에 끌려갈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 충실한 일본 신민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으며, 정미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역시 일제에 ‘협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인간 공출’의 희생자가 되면서, 지상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근원적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 조선인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 둘째, 조선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셋째, 조선인에게 ‘국민’이란 무엇인가, 등이다.
고향 강원도를 떠나 지옥의 섬 ‘군함도’에 이르는 험로는 ‘여로형 소설’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는 주인공의 자아 각성을 추동하는 서사적 장치이다. 지성은 도입부의 강제연행 과정 속에서 자신이 나라 잃은 ‘망명자’이자 결코 일본의 신민이 될 수 없는 ‘비(非)국민’적 상태에 처해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특히 국민국가의 바깥으로 ‘추방된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군함도에서 위태로운 강제노동과 비참한 생활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증폭된다.
정말로 주인공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건, 군함도에서 겪고 있는 가혹한 노동이나 열악한 생활환경이 아니다. 그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해저탄광의 고단한 강제 노역과 비인간적인 삶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지상이 “하루하루 이런 나날에 길들여지는 자신이 몸이 떨리게 싫”으며, “익숙해져 간다는 그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다”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듯―, ‘지옥이 일상이 되는 삶’인 것이다.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지상은 아들 출산 소식에 숙소 동료들과 함께 소박한 축하연을 열고, 드문드문 조선에 있는 아내와 편지 왕래도 한다. 비록 조선인 강제동원 노무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군함도 내부에는 학교 극장 시장 우체국 등의 생활공간 역시 있었다.
하시마섬은 일제 강제연행의 폭력과 억압을 증언하는 실체적 공간인 동시에 어떤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의 표상이기도 했다. 미쯔비시광업소의 노무관리 시스템은 조선인 노동자의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지옥을 일상화시켰다. 이 공간에서 스러진 조선인의 이름은 철저하게 지워졌다. 조르조 아감벤은 증언할 수 없는 것, 증언되지 않은 것에는 각기 ‘이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그 이름이 ‘무젤만(이슬람교도)’이었다면, ‘군함도’에서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무명(無名)의 조선인이다.
아무리 약하고 이름 없는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지옥을 ‘일상의 풍경’으로 인정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지상’은 군함도를 탈출한다. 흥미로운 것은 ‘지상’이라는 이름의 알레고리이다. 주인공은 ‘어둠-지하’의 터널을 빠져나와 ‘빛-지상’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명명법(命名法)에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비참한 삶이 일상처럼 지속되는 ‘지하 700m의 해저 탄광’, 그 절망의 심연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의 의지이다.
‘군함도’, 아니 ‘일상이 지옥이 되는 삶’을 통해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건, 누군가를 지배하고 예속하는 식민주의적 삶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삶’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당신의 일상은 자유로운가.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