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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2021년 8월 18일을 고대하며

4년 뒤 오늘은 ‘피란수도 부산’ 역사가 시작된 지 70주년

세계유산 등재로 개발 병폐 치유하고 지속가능성 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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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8-17 19:12:4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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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정확히 ‘1950년 8월 18일’은 1023일 동안 피란수도의 대장정이 시작된 날이다. 6·25전쟁 얘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도시, 그 ‘부산’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정의된다. 피란민들의 아픔을 품었던 도시, 전쟁 중 국가를 지킨 도시, 세계에서 유일한유엔군 묘지가 있는 도시 등. 순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29개월 동안 독일군 침공을 버티며 전쟁을 역전시킨 ‘영웅 도시’라는 애칭을 가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떠오른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군 폭격으로 인한 파괴와 고립으로 40만 명 아사(餓死)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단 한 번의 폭격도 없었다. 6·25전쟁 하면 가장 빨리 떠오르는, 또 회자되는 도시임에도 ‘부산에서는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역설적이다.
   
공식 통계로 당시 부산의 피란민 수는 최소 100만 명이 넘었다. 원래 부산은 30만 계획도시에 40만이 살던 도시였다. 4인 가족이 사는 비좁은 집에 갑자기 10명 이상의 사람이 들이닥친 꼴이었다. 그 집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며칠 사이에 아수라장을 넘어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부산은 그런 도시였다. 100만 이상의 피란민을 품으며 전쟁 역전의 시간을 벌게 했던, 그래서 대한민국을 수호했던 평화의 도시였다.

그 역사의 시작이 바로 1950년 8월 18일이었다. 8월 18일을 기억하고 다시 바라보자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21세기형 국제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부산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다시 세우기 위함이다. 8월 18일을 기념하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에서의 부산 역할론 재정립’의 계기가 될 것이다. 8월 18일은 부산 인구가 서너 배 이상 급증하며모든 것을 뒤바꾼 첫날이었다. 경제, 정치, 생활, 행정 등 부산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했던 대반전의 날이었다. 쉬이 끝날 줄알았던 전쟁이 길어지며, 피란민들에게 있어 부산은 임시 피란처가 아닌 제2의 고향이자 삶터가 되었다. 휴전 후에도 7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은 부산을 떠나지 않으며 부산사람이 되었고, 그들이 일구며 살았던 항구 경사 지대의 집들은 가마니, 종이박스, 막사, 판자, 슬레이트, 슬래브를 지나 부산의 대표주거지대인 ‘산복도로’를 형성했다. 그곳에는 지금도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100만이 넘는 시민이 살고 있다.

자식들을 키우며 먹고살기 위해 언젠가는 돌아올 헤어진 가족들을 기다리며, 그들이 땀 흘리며 뛰어다녔던 1950, 60년대의 부산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였고 산업역군이었다. 또 한편으로 그들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울던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이 누볐던 광복동과 남포동은 부산 최고의 번화가로, 그들의 무한한 노동력을 제공했던 서면-동천 일대는 국가 경제를 책임졌던 산업지대를 거쳐 부산 경제를 리드하는 상업금융지로, 자갈치아지매와 깡깡이아지매의 활동무대였던 부둣가는우리나라 최고의 항구로 변신했다. 갑자기 100만 도시가 된 후 부산은 단 하루도 쉼 없이 달려왔다. 과밀에 따른 혼잡과 결핍은 당연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밀도로인해 조정과 절제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그래서 총체적 관점의 도시계획을 시행할 기회조차도 얻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사실,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는 오직 개발만이 도시를 살려내는 길이라 여겼다. 전쟁, 피란기와 재건기로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를 지우는 것이 부산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다짐해왔다. 그런데 세상이 급하게 바뀌며 새로운 흐름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지나간 부산의 것들이 무조건 지워야 할 부정의 것이 아니며, 부산이 걸어온 과정과 결과들이 모두 대한민국의 근대문화유산이자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산만의 유일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부터, 부산에서는 피란수도를 상징하는 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왜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 피란수도 부산을 기억하려 할까. 왜 부산이 피란수도였음을 전 세계에 굳이 알리려 할까. 한숨 섞인 답답한 반문을 하는 이유는 피란수도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이토록 특별한 부산을 개발에 매달리며 수십 년간 범용적으로 다루어온 지난 시간에 대한 가슴 아린 후회 때문이다. ‘과연 지금 부산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수 있는 진정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작금의 현실이다.

세계유산은 갑자기 열심히 한다고 해서 맘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 모두가 취해온 부산에 대한 판단과 자세를 100% 이상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등재는 불가능하다. 전 세계 많은 도시가 세계유산 등재를 끊임없이 열망하는 이유를 정확히 보아야 한다. 절대 등재만이 목표가 아니다. 등재의 준비과정 속에서 ‘지속가능한 도시역사와 유산’이라는 새로운 미래비전을 품기 위함이다. 즉, 세계유산을 고질화된 도시 병폐를 치료하는 ‘체질 개선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우리는 어떤 수준의 체질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실천이다. 이는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본질을 꿰뚫기 위한 노력이며, 부산이 진정한 근대역사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글을 적으며 작은 확신이 생겼다. 1950년8월 18일은 단지 피란수도가 시작된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켜낸 터닝 포인트이자 지금의 부산을 재탄생케 한 날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부터 꼭 4년 후인 2021년 8월 18일은 부산 재탄생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남은 시간이 비록 짧아 보이지만, 근대역사도시 부산으로서의 품격을 재정립하고지속가능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위한 혁신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앞으로 4년! 체계적으로, 섬세하게, 그리고 온 정성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해보자. 4년 후 오늘, 분명 세계유산 등재가 바짝 다가와 있을 것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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