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바다의 여신 남무가 있었다. 그녀에게서 하늘과 땅이 합쳐진 안키가 생겨났다. 안키는 대기의 신 엔릴을 낳았다. 창조주 엔키는 식물, 동물, 새, 물고기를 만들었다. 엔키는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를 시켜 진흙을 가지고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른바 수메르의 창조신화로 점토판 문서로 새겨진 ‘에리두 창세기’이다.
기원전 3000년 이전, 메소포타미아에 수메르 문명이 있었다. 그 문명은 점토판에 새겨진 문자가 발굴됨으로써 증명됐다. 남자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여자, 이상향 딜문과 사과, 뱀 이야기, 메소포타미아 홍수 이야기를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 지구라트 탑과 인간의 언어분열을 담은 엔메르카르 서사시…. 이집트, 그리스, 히브리 등 인류 문명의 원형이 다 담겨 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한다’는 새뮤얼 크레이그의 말이 헛말이 아니다.
숱한 이야기 중에 눈에 띄는 건 ‘검은 머리의 사람들’. 씨름과 상투 문화도 확 끌린다. 수메르문명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인류 문화의 시원에다 설형문자, 법전, 녹로, 수레 등 문명의 시초를 장식했다. 그들의 언어 구조는 신기하다. 문장에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 중국과 다르고 인도말, 우리말과 같다. 수메르어와 남인도의 인도말, 우리말은 상당히 닮아 있다. 어떻게 된 걸까.
몽골어와 우리말의 근친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의 거서간이나 마립간, 고구려의 막리지 등은 몽골 말과 거의 같다. 고려 때 원나라 침공 이후 몽골어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아기, 아가씨, 마누라, 마마, 무수리, 사돈 등 호칭은 물론 수라, 설렁탕 등 음식 문화에도 남아 있다. 벼슬아치, 장사치, 반빗아치 등 직업인을 일컫는 말은 수두룩하다. 부산의 자갈치도 몽골어에서 왔는데 어부를 뜻한다고 한다.
영어는 유래가 뚜렷한 반면 우리말은 근원을 모른다. 기록과 기억의 부재 탓이다. 기록을 소홀히 하는 폐습은 비단 옛일만은 아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30년간 발행한 한국문집총간은 1259종이다. 대부분이 개인 문집이고 정작 중요한 역사와 학술, 사상 서적은 손을 못 대고 있다. 현재 번역이 필요한 한문 서적은 1만 종 10만 책. 고전번역원은 이 중 1차로 내년부터 10년간 2000종을 펴낼 계획이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아마 예산 탓인 듯하다.
반면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어 2000년대부터 주변국의 한문 자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른바 고서공정이란다. 타국의 역사에 이어 타국의 문화적 소산까지 손대려 하다니…. 팽창주의가 심히 우려스럽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은 2년 만인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에 통합됐다. 기껏 고조선, 부여, 발해의 역사만 가볍게 다뤘을 뿐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역사지도를 내놓았지만 부실 딱지를 받아 폐기됐다. 도종환 문화부장관 청문회 때 거론됐던 ‘환단고기’ 논란은 이와 관련돼 있다. 독도 표기와 한사군 위치 문제가 빌미다. 부족하면 보완하면 될 것을…. 수백억 원을 들인 성과물을 폐기해 존재 자체가 흔들릴 판이다.
다시, 광복절이다. 72년, 그 긴 세월 동안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일제시대는 한마디로 우리말의 수난기였다. 창씨개명은 말할 것도 없고 창지개명이라 하여 3만600여 개의 군, 면, 리, 동 이름을 바꿔버렸다. 긴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도 서울 지명의 35%가 일제 때 이름이라 하니 기가 막힌다. 상해 임시정부 기념관도 이제야 서울에 건립한다. 망각의 도가 지나치다.
가야사 연구라…. 정부가 나서니 다들 생뚱맞다 했을 듯하다. 한데, 그게 아니다.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찾는 건 우리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과거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미래의 거울이다. 온 곳을 모르는데 갈 곳을 알겠는가. 물론 해야 할 일은 가야사만이 아니다. 북방로와 남방로의 민족 이동로, 고대사와 그 뿌리인 우리말의 근원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사의 시야를 아시아 전체로 넓혀야 우리의 본 모습이 보인다. 말은 곧 우리 역사의 거울이자 우리의 정체성이다.
‘멋’은 외국어에 없는 독특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모음 하나를 바꾸면 ‘맛’이 된다. 둘은 같으면서 다르다. 그 미묘한 쓰임새는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족하다. ‘우리’라는 말도 특이하다. 세상에 ‘나’를 ‘우리’라고 말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엄마…. 이런 기묘함은 어디서 온 걸까. 수메르든, 인도든, 몽골이든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말의 역사를 정립해야 뿌리가 굳건해진다. 우리말의 뿌리를 추적하는 건 역사를 바로잡는 지름길이며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는 새로운 길이다. 그것은 곧 일제가 심어둔 실증사학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